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함부로 선망하고 가진 것을 폄하하는데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람은 어떻게 빚어지는 걸까. 인상 깊은 사람과의 충돌 속에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의 교집합 속에서 삶이 매일같이 둔탁하게 움직인다.
어떤 순간은 끊임없이 파고든다. 모든 상상과 감성, 논리와 태도를 허물고 보호 구역을 침입해 속을 난장판으로 뒤집는다. 잊으려고 해도, 외면하려 해도 순식간에 생생하게 복원되는 기억. 너무 강제적이어서 불편한 기억. 그런 건 장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경험이라고 부른다.
불행의 크기와 깊이를 재는 나만의 잣대는 너무나 이중적이어서 같은 한국인들에게만 들어밀어졌다. 새라와 노라 같은 애들이야말로 안중에도 없는 존재였다. 그 애들이 뭔가를 불평하거나 투정 부린 순간은 아주 빠르게,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않고 지나갔다. 나와 한나를 비롯한 아시안들의 이름과 지위와 인간관계를 쥐고 흔들며 진짜 위협하는 것은 노라와 새라였는데도 말이다.
"부스러기 얘기 알아?"
"그게 뭔데?"
"모든 일에는 부스러기가 있대.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것 때문에 꼭 다른 일들이 일어난대. 되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다 이유가 있고, 그게 또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치는 거래."
그러나 곧 깨달았다. 남의 경험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남의 호의를 깎아내리는 내 콤플렉스가, 바로 그 진부한 의심이 행복을 가리고 있다는 걸. 행복을 찾기 위해선 내 마음에서 뻗어 나온 지저분한 감정들을 잘라내야 했다. 가지치기해서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가지는 다시 자라고 말잖아. 잘라낼수록 더 굵고 길어질지도 모르지.
시에 대해 생각하고, 한나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들에 대해 생각했다. 정서, 분위기,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무언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데도, 배우고 깨닫는데도 왜 마음의 틀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왜 원하던 것을 계속 원하고, 두려운 것은 계속 두렵고, 집착을 놓을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할 때, 나는 가려지고 훼손된다. 하지만 그게 원래 사랑이 하는 일이라면, 사랑의 목적이라면. 나를 가리고 훼손하려고 사랑이 나를 찾아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적응과 비슷해진다. 몸과 마음을 깎고 자신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땅에, 모르는 언어에, 미지의 두려움과 아름다움에 공명하는 일, 사랑은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버틸 것이고, 나를 위해 누군가를 혼자 두거나 슬퍼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희생시키지 않을 거라고. 가능성을 열어두되 남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나다워져서, 더 나다워진 내가 더 뚜렷한 미래를 만지게 하고 싶다 이제야 사람들이 어떻게 상실의 슬픔을 회복하고 사는지 알 것 같다. 수없이 쌓인 슬픔의 부스러기 위에서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만이 미래의 문을 연다.
↳ 제니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생긴 상처와 불안, 두려움 때문에 걱정 어린 눈초리로 한나를 지켜보던 모습은 참 따스했지만 한나와 거리를 두는 제니의 모습을 볼 땐 가슴 아려와씀... 한나의 순수함과 제니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해 마음이 무거워지드라ㅠ 한나의 비극적인 결말은 타인에게서 반복적으로 외면받고 배제당한 사회적 배경이 만들어낸 무관심과 사랑의 결핍, 그리고 깊은 외로움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