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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 2024.12.29

2024.12.28 (Sat)
로키 그가 숲속을 걸어간다 그의 이름은 로키 무엇도 된 적 없고, 사실 로키는 로키도 된 적 없다 사람들이 로키 몰래 그렇게 부르는 것뿐이니까 구름보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쓰르라미보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로키는 아무것이나 되고 싶다 로키도 좋다 로키는 자신의 그림자가 무겁다 그림자는 로키보다 더 지쳐 있다 그러나 로키는 그림자를 업을 수 없다 침엽수들의 캄캄하고 젊은 그림자 숲 어디에도 로키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로키는 또다른 로키를 만날 뿐인데, 로키는 먼저 말을 거는 위인이 아니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아서 노루처럼 덤불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낮이면 밤에 잘 일이 걱정되어 끝없이 잠을 잔다 영혼은 있다 지치지 않는 새처럼 빗장뼈 아래서 퍼덕이며 죽을 때까지 집을 나가지 않는다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어딘가 조금씩 닮은 생김새, 로키는 휴식을 취하면 불안하고 걸으면 어지럽다 손을 넣기도 죄스러운 푸른 호수에 돌을 던진 일이 오늘 로키가 한 일의 전부다 - 고통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흘린 피와 눈물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것은 다만 '고통'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호소하는 지난한 과정일 따름인 것이 아니라, '생' 그 자체를 온전히 언어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었던 셈이다. 비록 그 과정은 완수될 수 없는 것이기에 시인은 끝없이 피와 눈물을 흘리며 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게 되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피와 눈물의 길이 시인을 거듭 살아 있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지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고통, 그것은 나를 괴롭게 만들지만 결코 죽이지는 못하는 생의 동력이라고. "심장이 음악으로 반짝"(『라보카행 오토바이」)이는 순간은 오직 생의 동력이 다하지 않은 한에서만 찾아올 따름이라고. 그리고 그 길에 서 우리는 가끔 다른 세계와 겹쳐지기도 한다고. 그러한 겹침은 오직 우리가 예비된 묘비명 아래 몸을 누이지 않은 한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라고. 그러니, 오직 나의 고통, 오직 나의 갈망. 그것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다만 그 생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굶주린 비명을 지르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살아 있음, 그것만이 모든 기적의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에. -해설 <기적의 유일한 조건> , 임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