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 01.13

2025.01.12 (Sun)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난 2024년. 처음으로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동기화되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공동체의 힘에,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가장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통곡 소리에 귀를 기울인 한 해였다. 아마 개인적으로도 고통을 받은 힘겨운 한해였기에 더욱이 공감을 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책을 읽기 전 그저 구경이라는 명목으로 소비되는 타인의 고통은 어디까지인지, 고통을 무아지경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제재는 왜 없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읽는 내내 알고 있었던 사건들도, 미처 알지 못한 사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저 그들을 고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 언론의 관점에서 타인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소위 ‘기레기‘라는 좋지 않은 의미로 기자들에게 붙는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론 및 기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인정 작가님, 기자님처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뭔가를 이루기 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또 다른 공동체에게 전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공감하는 제 3자이지만, 언젠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함을 알게되었다. 불행과 위험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피해갈 수 없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이끌려 ‘끼리끼리 공감’만 가능해진 지금, 연민은 더 이상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민하기를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재해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고통을 구경한다.
뉴스는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왜 우리가 ‘타자의 고통’에 섣불리 공감하기보다 고통을 겪는 타자의 공간에 침범하는 걸 더 조심해야하는지, 왜 우리의 얄팍한 이해력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할 때’가 아니라 ‘다 아는 척할 때’ 더 나빠지는지.
일이 일어난 흔적이 말끔하게 정리되기 전에, 고통의 흔적이라도 촬영해야 해서였다.
고통을 가깝고 자세하게 찍은 장면일수록 ‘뉴스 가치’가 높아진다. ‘그림이 좋은’ 사고 뉴스는 큐시트에서 더 앞쪽에 배치된다. 같은 뉴스라도 그림이 좋지 않으면 방송 자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무엇이 뉴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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