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앱에서 친구를 팔로우하고 소식을 받아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해보세요
전체 공개 ・ 2025.05.09

2025.05.05 (Mon)
주인공의 직업은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이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전 아내 캐서린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으로 남의 편지가 아닌 자신의 편지를 직접 쓴 장면이다. 작중에서 테오도르의 전아내 캐서린은 테오도르에게 "당신은 진짜 감정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두가지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요소라고 보았다. 영화에서 OS 사만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찰하고, 세상과 인간을 배우고, 생각한다. 인간과 유사한 감정도 느낀다. 주인공 테오도르와 감정적인 유대를 가지고 연인관계를 만들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질문이 지속적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저 AI가 말하고 느끼는 것이 정말 사만다라는 하나의 개체의 것인가" 일단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진실인지 어떤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다만 영화에서 AI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진실이라 가정하겠다. AI가 느끼는 감정이 진실이라 한들, 진짜 생명을 가진 인간끼리 행할 수 있는 육체적인 감정표현과 모든 감각(시각, 후각, 촉각, 청각, 통각 등등)으로 받아들이며 쌓는 정보는 다르며 그로 인한 학습과 감정은 다르다. 테오도르가 AI와 교류하는 것은 마치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과 같다. 그들의 경험을 학습한 것을 토대로 그들의 감정에 이입하며 진짜 본인이 된 것처럼 감정을 담아 편지를 써내려간다. 하지만 결국 테오도르가 대필한 편지는 본인의 것이 아니다. 그 편지들을 읽으며 감동받고 슬퍼하거나 기뻐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 본인이 될 수는 없다. 편지를 주고 받는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 또한 본인의 것이 될 수 없다. 그저 남의 경험을 흡수한 것 마냥, 마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과 비슷할 뿐이다. 테오도르는 실제 인간들끼리 감정을 주고받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회피하는 인물이었고, 실제로 그런 모습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찌질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전부인 캐서린 앞에서도 본인이 느끼는 것들을 계속해서 숨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타인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캐릭터성을 부각시켜주는 요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현대인들의 모습을 과장시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을 숨기거나 꾸며내고 챗GPT에게 심리상담을 받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AI는 실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대상이 아니라 타인들처럼 사회에서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감정을 유사하게 느끼게 해주는 장치였다. 마지막에 사만다가 테오도르 뿐만아니라 몇천명과 동시에 소통하며 몇백명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인간사회에서의 연인관계와는 다른 것이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그 관계는 진짜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실제로 영화를 주의깊게 보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이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는 장면, 눈이 나무 위로, 사람의 옷과 머리위로 쌓이는 장면, 거리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도시 전체가 움직이는 모습 등 실제 현실에 대한 묘사를 구체적으로 자세히 부각해서 보여준다. 이 장면은 결국 실체가 없는 AI는 우리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내 결론은 이렇다. 사만다가 느끼는 감정은 사실 크게 중요치 않다. 우리는 그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해내지 못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 주인공 테오도르의 것이다. 그가 사만다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명 가짜가 아닌 진실된 것이다. 다만 그들의 관계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진짜'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사만다를 비롯한 모든 OS들은 한순간에 그들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인간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라져버린다. 테오도르가 전부인 캐서린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지지부진한 이혼 절차를 밟아 나간 것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