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 뭉쳐 밀고 나가는 힘이 없고 전체적으로 흩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병헌은 세 명의 동료 앞에서 동료애를 강조하는 웅변을 한다(이 공장에서 자란, 나에게 기술을 알려준, 기계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이렇게 동료애를 강조하던 이병헌은 결말부에서 홀로 남는다. 자신이 동료들(이 역시 세 명!)을 죽였기 때문이다(실제 동료는 아니지만 죽은 세 사람은 제지업계 종사자를 대표한다.). 나에게는 이병헌이 자신을 죽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죽은 세 사람과 이병헌의 동질성이 계속해서 부각된다. 경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병헌처럼 아반떼를 타는 차승원, 이성민의 말을 아내와의 대화에서 되풀이하는 이병헌 등등…(이병헌의 집은 이성민의 집과 닮아보이며, 이성민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이병헌은 자신의 아내도 의심한다.) 자신을 죽여온 사람이 행복할 순 없을 것이다. 맨마지막의 벌목 장면과 함께 영화가 여지없는 배드엔딩이라는 증거다. 이병헌의 캐릭터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는 모순적 인물이다. 손예진은 그가 식물을 너무 사랑한다며 식물인간이라고 부르는데, 이병헌이 분재하는 장면은 너무나 섬뜩하게 묘사되었다. 식물인간이라는 명칭이 ‘이병헌=식물’인을 나타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자기파괴적 성격을 옅볼 수 있다(그는 세 명의 자신을 죽였다.). 이병헌과 그의 아버지 간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월남전에 다녀온 아버지, 자신의 상황을 전쟁에 비유하는 이병헌. 이성민의 아버지도 제지업계에 종사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이병헌의 아버지는 곧 이병헌이다. 이런 이병헌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한 창고를 무너뜨리고 온실을 지었다. 이 역시 이병헌의 자기파괴적 성격을 드러낸다. 이병헌은 책임감이 강하다. 초반에 해고에 저항하며 “제 일이죠!”라고 이야기 하는 점이나 다른 점들이 그 사실을 드러낸다. 이는 종이를 직접 두드려 보면서 일하는 것으로 상징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와서, 그는 더 이상 종이를 손으로 두드릴 필요가 없다. 결말부에서 이병헌만 딸의 연주를 듣지 못하는 것은 이병헌이 가족에서 소외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정이 붕괴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붕괴는 영화의 첫 시퀀스부터 나타난다. 카메라는 하늘을 비추다 아래로 내려오며 가족을 보여준다. 그 후 비슷한 연출이 한 번 더 나오며, 가족들은 이때 장어(해고 선물)를 구워먹고 있다.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에 그들은 불행을 곁에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