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진다
복권을 사러 가면서 짐짓 당첨금의 용처를 고민하고
입사원서를 내면서 첫 월급으로 살 것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종종 바로 다음의 순간에 가서
지금 여기를 바라보곤 한다
잘못을 저지르기도 전에 미리 벌을 받는 식으로
우리의 현재는 대개 채무와 관계되고
머물렀던 자리에는 반드시 요금계산서가 따라붙는다
거대한 바람에 날아갈 뻔했던 이웃을 붙잡은 건
뻔한 미납금 고지서였다
결과의 자리에 가서 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애벌레는 나비가,
씨앗은 나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의심범이 아니라 확신범이 되고 싶다
우리는 갑자기 발생한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 단어처럼 희박하다가
강물로 섞여드는 빗물처럼 희미하다가
계기판을 바라보듯 얼굴을 찬찬히 살핀 후
담당의가 미간을 좁히며 들이마시세요 청진할 때
두 개의 허파가 조영되는 식으로
어두컴컴한 화면 속에서 숨을 잔뜩 들이마신 허파가
나비 표본처럼 고정되어 있다
나무 같기도 하고 희미한 잎맥 같기도 한 바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