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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아무도 살아서 못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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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인
영화 / TV
결핍 없는 사람이 있을까?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큰 상흔을 남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흉터 하나쯤 가지고도, 그게 뭐라고. 지지고 볶고 잘만 산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유독 성폭력 피해자에게 아직까지도 분명히 요구하는 바가 있다. 그가 선량한지, 행실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않은 '완벽한' 피해자인지, 여지를 주진 않았는지. 왜 눈물 흘리며 괴로움을 호소하지 않고 벌써 극복했는지, 왜 지금은 두 다리 뻗고 잘 자는지까지 낱낱이 확인하려고 하는 것만 같다. 피해자가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것을 꺼린다.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 같다. 정말 끔찍하고 악질적인 범죄임은 맞지만 '평생 지울 수 없는 족쇄'라는 낙인은 사회에서 찍어버린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고, 피해자가 스스로 일어서는 과정을 무시하고... '평생 괴로워야 하는 아주 개인적인 불행'으로 치부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함. 그래서 약자는 약자와 연대한다. 삶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상처를 서툴게 토닥이며 위로한다.(이 과정에서 다시 피가 나기도 하지만) 때때로 어떤 아픔은, 약이 치유해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손을 내밀며 걱정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로 덜어지기도 하니까. 주인이는 당차고 활기차다. 겉보기에 그 누구도 '피해자'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만큼 밝고, 이성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지만, 때로는 욱하는 감정을 참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너무너무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외부와 단절되어 고요한 장소. 동시에 주위가 온통 물소리, 기계소리, 웅웅대는 소리로만 가득 찼을 때 그제서야 악에 받쳐서 참았던 슬픔과 괴로움을 발작하듯 표출하는 주인이가 그냥 너무 슬펐다. 너무나도 작은 구역, 짧다면 짧은 몇 분 동안 주인의 분노와 원망이 표출되고, 절정이 되고, 마침내 갈무리된다. 이 장면은 배우들과 배우들의 뒷통수를 비추는 카메라만 넣은 채 촬영된 장면이라고 한다. 이 구도도 참 좋았다... 주인이의 동생 해인이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혼자서 진행한 마술쇼에서 끝내 숨기지 못한 걱정박스나, 끝내 숨기지 못한 누나에 대한 걱정, 그사람의 편지에 대한 답장... 유치원 원장이면서, 죄책감으로 알코올에 의존하는 주인의 엄마도 안타까웠다. 서툴게 걱정하며 주워담지 못할 말을 서슴없이 하는 주인의 친한 친구들. '다름'을 불편해하고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친구. 수호에게 (어린 여동생을 걱정하느라..) 선의에 기반한 공격을 받기도 하고, 익명의 쪽지로 편견 어린 시선에 찔리기도 한다. 주인의 세계가 흔들리고 무너질 위기가 닥친다. 그래도 주인의 세계를 지탱해주는 것은 위태롭고 연약해도 모이면 단단해지는 사람들. 숨 쉴 공간을 열어주는 관장님, 무너진 딸 옆에서 무너지지 않고 한바퀴 더 돌까 묻는 강한 엄마와 씩씩한 동생, 비슷한 상처를 가진 미도와 봉사단체 사람들, 변함없이 대해주는 친구 유라가 있다. 그래서 영제목이 The Love of World 인가보다. 그냥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였다. 주인공의 고통만 조명한 것도 아니었다. 주인이는 평생 피해자 입장인 것도 아니고, 어쩌면 누리에게는 가해자의 입장이기도 한 입체적인 인물이다. 여기 나오는 모두가 그렇다. 피해자에게 주인이처럼 강해져라, 극복하고 빨리 회복해라 하는 의도도 아니었다. 선의와 악의와 무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나이브한건지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조금 무거웠지만 오히려 많이 와닿았다. 그래서 반대로 나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들을 위한 영화라고도 느꼈다. 어쩌면 지금 내 감상은 아주 일차원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0.5점, 별 반 개를 덜어냈다. 나를 설득하고 몰입시키고 '이 영화는 좋은 의도를 가진 영화야' 라는 건 증명했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계속 여러 의견들이 생겨날 것이므로 이런 주제에서 매번 별 반개는 영영 더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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