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공개 ・ 2025.02.19

2025.02.17 (Mon)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뒤, 문득 한강의 순수함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흰. 한 글자에 스며든 맑음. 그 속에 스러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부재와 존재가 함께 깃들어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마치 새하얀 눈밭을 오래도록 바라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요하고, 아프고, 무너지는 감각. 이 책은 한 편의 시 같았고, 나는 그 시 속에서 차가운 운율을 느끼는 갓난 아이가 되었다. 책은 ‘흰색’ 이라는 색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계를 어른거린다. 가장 강렬했던 건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존재했지만 존재할 수 없었던 아이. 작가는 그 ‘달떡 같았던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주듯, 흰 것들을 불러내어 기억하고 기록한다. 아름답고 쓸쓸한 한강의 문장에 먹먹함이 뼛속 깊이 차올라, 숨막힐 듯 빠르게 읽어낸 것이 후회된다. 이 책이 내 손에 다시 한번 들어오게 된다면, 더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이 책은 ‘부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자가, 살아남지 못한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기억하고 쓰는 것. 그렇게 해서라도 존재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누구나 부재를 안고 살아간다. 만남과 동시에 이별이 태어난다. 우리는 이별이 자라나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 만남을 삼키고 흰 눈처럼 내 속에 스며들 이별을.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