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공개 ・ 2025.02.21

2025.02.18 (Tue)
아몬드를 읽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아니,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태어난 소년. 윤재는 두려움도, 분노도, 슬픔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 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 속에서, 외우며 배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는 혼자가 되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공허한 세계 속에 던져졌다. 그리고 곤을 만났다. 곤은 윤재와 달랐다.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아서, 넘쳐흘러서, 세상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아이. 처음에는 부딪쳤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윤재가 곤을 만난 것이, 곤이 윤재를 만난 것이, 서로가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는지도 몰랐다. 윤재는 서서히 변해갔다.윤재는 처음으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바라보았다. 상실과 고통, 그리고 그것들을 감싸 안으려 했던 사람들. 어머니가 남긴 말들, 할머니의 체온, 누군가의 눈빛.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이제는 조금쯤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곤도 변해갔다. 삐뚤어져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정리되었다. 윤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곤은 너무 많이 느끼는 아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윤재는 깨달았다.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아플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곧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제 안다. 세상은 무채색이 아니며, 차가운 것들 사이에서도 따뜻함은 존재한다는 것을.
소재가 신선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변해가는 것, 감정이 결여된 시선에서 풀어나가는 객관적인 설명들. 헌책방의 이미지가 마음 속에 남는 작품이다. 항상 책 제목이 ‘아몬드’인 이유가 궁금했는데, 초반부에 그 이유를 간접적으로 깨닫고나선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 ‘철사‘라 불리는 남성을 만나는 과정부터 아주 조금 내용에 개연성이 떨어지고 단순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도라와의 만남에서 주고받는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진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정말 어른이 쓴 소설, 딱 그정도 같았다. 다들 인생작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감동적이게 와닿진 않았다. 청소년 문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