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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5.29

2026.05.28 (Thu)
학교 멘토링 독서 때문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도 많았지만, 비판할 점도 많아 보였다. 그래서 ‘보고서를 비판적인 내용으로 써도 되겠습니까. 책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담당 선생님께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본인은 이 책이 좋다고 생각하여 골랐기에 비판은 자신이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고. 정 그러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는 정도로만 (생기부를) 쓰고 끝내겠다고. 이게 뭐란 말인가. 멘토링 독서의 본질은 성적만으로는 측정될 수 없는 학생의 사고력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선생님의 위와 같은 태도는 지극히 방어적이며 대단히 안일하고, 심지어는 (내가 이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책의 내용과도 완전히 모순된다! 내가 했던 생각이, 읽히지 않는 글은 외롭고 실천되지 않는 철학은 공허하다. 이제 이 책에 대한 나의 논증적 비판은 외롭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개탄스러워 적는다. 다음은 황농문 교수의 ‘몰입 확장판‘에 대한 나의 비판이다. 몰입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일이다? 당연히 말이 안 된다. 저자는 충분히 배운 사람임에도 이런 바보같은 표현(비유라 할지라도)을 사용했다. 몰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자신의 업적과 몰입의 효용을 지나치게 예찬한다는 것이다. 비판적 독자라면 알아챘으리라. ‘몰입’은 인간들간의 교류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저자는 한 과학자의 ‘문제를 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과학계에서 중요한 문제이므로 연구하고 있다.‘는 말에 감명받아 그러한 태도를 자신의 모토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럼 저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란 어떻게 정해지는가? 이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저자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 둘 째, 중요하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 첫 째는 말이 안 된다. 만약 중요한 것이 첫째와 같이 정의된다면 저자는 중요한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란 중요하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되었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 간에 공유된 기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 기준이란 무엇일까?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하는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책의 문제가 드러난다. 저자는 높은 몰입도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몰입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단절이 발생하며 저자 또한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다. 인간이 계속해서 몰입만 한다면 친구를 만들 수도, 애인을 사귈 수도 없으며 그 결과는 인류의 절멸이다. 그때 저자는 무엇을 위해 몰입하는가. ’저자가 모든 사람이 몰입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같은 바보같은 반박은 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몰입할 사람은 몰입을 통해 지고의 행복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실존하지 말라는 지극히 플라톤스러운 궤변이 도출되니까. ‘몰입‘은 또한 진정으로 좋은 지식이란 간학문적 연구 위에서 가능함을 간과한다. 저자는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모든 일에는 관심을 꺼야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책의 내용은 별로 새롭지도 않다. 내가 이전에 쓴 ‘진압론‘과도 일맥상통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적으로 깨달았을만한 내용이다. 이 책의 의의는 그러한 현상을 그럴 듯하게 명명하고 뇌과학적 지식을 통해 그 원리를 규명했다는 것 정도이다. 그렇기에 위에서 언급한 엔트로피 비유는 더더욱 책을 모순 속에 빠뜨린다(책의 거의 유일한 의의가 과학적/실증적 논증에 있는데 엔트로피 비유는 학문적 엄밀성을 떨어뜨리므로.). 별개로, 중간에 니콜라 테슬라의 말을 인용하며 그 출처로 유튜브 채널을 제시하던데 이러한 행동은 중학생 시절의 나도 하지 않는다. 4장부터 문장 호응이 되지 않는 비문이 급격히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