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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2024.11.06

2024.11.03 (Sun)
두꺼비집이 닫히는 것처럼, 물기 묻은 전원에 스위치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것처럼, 사랑 같은 거, 호감 같은 거, 느끼려는 순간 철컥 하고 스위치가 내려져.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아. 감정이 암전된 것만 같아.
30
그 앞에 서면 이 세상 누군가의 앞에 설 때보다 그냥 나였다. 아버지 앞이나 어머니 앞이나 동생 록이 그리고 민준이 앞에 서면 써야 했던 어떤 가면을 나는 그 앞에서는 쓸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부지런했다. 그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생각한 일이지만 그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슬픔이라는 점령군에게 마음의 영토를 다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고 있던 것도 같았다.
33
행복은 알 듯 모를 듯 하나씩 오지만 불행은 떼를 지어 다닌다는 서양의 격언이 떠올랐다. 하나씩 왔다면 나는 견디지 못했을지 모르니까. 한 가지 불행으로 한 가지 불행을 잊고, 이것이 견디기 힘들면 저 불행을 생각하고, 그것이 힘이 들면 불행들이 서로 제가 더 불행한 거라고 싸우는 꼴을 우두커니 지켜보면 되니까.
37
무슨 핑계를 대서 나는 그의 곁으로 갔을 거라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그와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참견하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그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을 하면 그냥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한 이기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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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싫어지는 때가 이런 때다. 늘 하던 실수를 늘 하는 내 자신을 바라볼 때, 그리고 심지어 그것에 뻔뻔해지지도 못할 때. 하지만 다음번에 그 순간이 온대도 내가 결국은 그 실수를 또 하고야 말 거라는 걸 알 때.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결심을 하거나 구호를 한 달쯤 외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거나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늘 데리고 살아야하는 나의 결점들을 그렇게 보게 될 때. 그리고 내가 고작 거기까지의 인간이라는 걸 그래서 또 깨닫게 될 때.
84
사람이 사는데, 꼭 나쁘다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더구나 누구를 사랑하는데. 그건 말이야,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야. 되돌릴 수도 없는 거, 그냥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고 그러는 게 좋지 않겠니?
87
네가 말하는 그 감정이라는 것도 변해 가.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네가 왜 그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게 되고. 감정은 변하는 거니까. 그건 고마운 거야. 변하니까 우린 사는 거야.
96
내가 너보다 많이 슬펐고, 내가 너보다 많이 기다렸고, 내가 너보다 많은 걸 걸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나를 잊어. 벚꽃이 일제히 지듯이 그렇게......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하고, 더 아팠던 사람하고, 정말 처음이었던 사람들이 이미 불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걸 너는 모르겠지, 영영 그렇게 모르겠지. 그러니 잊어. 하나도 남김없이 잊어.
100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109
두려워하지 마. 설사 여기서 다시 영영 이별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나 아직 사는 게 뭔지 사랑이 뭔지 잘 모르지만, 해놓고 하는 후회보다 하지 못해서 하는 후회가 더 크대.
134
준고와 내가 함께 이야기하던 결혼은 그런 결혼이 분명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결혼이라기보다는 그와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는 내 열망의 보통 명사였으며 영원히 사랑하자는 말의 다른 이름이었다.
169
실은 너한테 말하고 싶었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온 거라고. 나한테 잘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때는 못했는데 이젠 말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너한테 그 말을 한 번도 못하고 투정만 부려서 미안했다고. 그리고 웃으려고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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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걸 바랐나 봐. 감히 영원 같은 걸 갖고 싶었나 봐. 변하지 않는 거 말이야. 단단하고 중심이 잡혀 있고, 반짝반짝 빛나고 한참 있다 돌아와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두 팔을 벌려 주는 그런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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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마. 부끄러워하지도 마. 너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믿는 사람들의 편이고, 행복한 사람들의 편이야 왜냐하면 네 가슴은 사랑받았고 사랑했던 나날들의 꽃과 별과 바람이 가득할 테니까. 쓸쓸한 생은 많은 사람에게 그런 행복한 순간을 허용하지 않는데, 너는 한때 그것을 가졌어...그건 사실 모든 것을 가진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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