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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2.15

2026.02.14 (Sat)
끔찍한 재해로 찾아온 범람체를 색채가 가득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점이 흥미로웠다. 디스토피아라고 하면 보통은 생명을 전부 앗아가는 칙칙하고 생기없는 풍경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곳에서의 지상은 유화로 그린 그림처럼 생동감있고 유혹적이다. 인간에게 ‘자아’라는 건 왜 이리도 중요할까? 자아가 사라진 사람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의 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까? 내가 누군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도록 설계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인간의 감각과 판단력을 맹신한다. 범람체가 지구에 처음 상륙했을 때, 인간을 지성체로 느끼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지성체’라는 개념은 굉장히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지성체로 규정한다면 나와 비슷한 존재 또한 지성체로 여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고, 이는 나와 다른 존재는 지성체가 아니라고 여기게 만든다. 우리는, 인간은 ‘지성체’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나?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프와 태린의 사랑, 선오의 세상, 범람체의 구조, 생각할 게 아직도 너무너무 많다. 또읽어야지.
게다가 인간의 몸속에는 수많은 ‘외부에서 온 존재들’이 같이 살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실제로 우리를 구성한다. 인간이 ‘우리’라고 말할 때 그것은 꼭 인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눈빛이 반짝이고, 얼마 후 자스완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묻기도 한다.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냐고. 그러면 자스완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인간이 개체 중심적인 존재이기만 했을 때, 그들은 개인 혹은 작은 집단만을 생각했을 뿐, 행성 전체를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범람체와 결합된 인간은 연결망 속에서 사고하고, 그렇기에 자신이 행성 전체의 일부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였다. 지상의 일부를 인간의 터전으로 삼더라도, 지금 늪과 연결된 이들에게는 무작정 뻗어나가고 싶은 욕망이 없었다. 연결망을 통해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전체로 이어진 생각 체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스스로의 생각을 재검토하는 일이었다. 부분적인 충돌이 있었고 그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쳤지만, 전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부분은 없었다. 범람체와 결합된 인간이 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우리는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감지하지 않아. 너희는 눈에 의존해. 우리는 표면 진동과 분자의 확산을 통해 세상을 감지해. 너희가 구축한 문명은 우리에게는 인상적이지 않았어. 그래서 너희가 지성을 지닌 존재라는 걸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어.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우리의 잔가지들이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 이후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