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의 흐름으로 ‘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에 이어보게된 다큐
*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
이와 비슷한 주제로 발굴에 관한 다큐를 본 적 있었는데, 그때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영어공부를 위해 감상했던 지라 내용에 초점을 안 맞춰서 그런 듯.
이때 처음으로 excavate라는 단어를 알게되어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난다.(당시에 파묘도 토론토에서 봤어서 exhuma를 검색해보기도 했고, 뭔가 파거나 꺼내는 것에서 ex-의 접미를 활용한 단어들을 많이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호모 날레디‘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일 만한 호모종을 발견하여 이들에 관한 점진적인 연구를 하는 과정의 일부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개인적으로 평가해보자면, 상상력에 미친 고고학자들이 여지껏 본 적 없는 과거의 인물을 만나 폭주하는 내용이었다(..)
뼈만 가득 나오면 무언가 살았던 곳이구나, 할 텐데 무덤의 흔적(인위적으로 묻은 흔적)이나 불을 지핀 흔적, 손에 쥐고 있던 돌, 음식의 흔적, 이전의 다른 호모종이 새긴 것과 비슷한 문양(해시태그 모양의) 등이 이어 발견되며 말 그대로 여기는 얘네들이 날레디들을 묻으려고 모인 곳이구나(무덤!!)로 판단하며 상상력이 폭주해버리는 다큐였다. 상상력 폭주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나도 한 상상력 한다고 보지만, 고고학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과도한 상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사실은 나에게 이러한 사고 흐름이 당연시된 사회를 살고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평가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적절한 평가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무덤이 있다 = 내세를 생각했다’ 라던가, 손에 돌을 쥐고 묻혔다 = 내세에 사용하기 위해 돌을 함께 주었다‘ 와 같은 해석은 과도하게 해석된 게 아닐까 싶었다. 초반에 동료를 묻었다 -> 사랑에서 비롯된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 묻는다 로 해석한 것은 나도 감동 받았으나, 무덤을 고의로 형성했다 -> 내세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로 판단하는 것은 100퍼센트 공감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단순히 그들의 아픈, 생명력을 잃은 모습을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내 주위의 인물들이 그에 슬퍼하는 걸 함께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하여 그들을 생각하기 위해 모아 묻었을 수도 있고, 죽은 것들이 자연으로 돌아감을 알고 있기에 함께 자연으로 가렴 하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세 -> 죽음이후의 삶을 생각했다 ? 는 그 너머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보였다. 단순히 이집트의 무덤(피라미드)를 보면 신이나, 내세에 관련된 소재의 사료들이 더 많이 나오니 납득 가능한 선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무덤 하나로 내세? 이건 좀 overreact 였다는 것.. 이라는 나의 평가! 비슷하게 돌을 쥐고 묻은 걸 내세와 연관지으려고 할 때도 그렇게 느꼈다. 그냥 최애 돌이었을 수도 있잖아… 최애 돌로 생각하는 게 순간의 판단으로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던 것 같다.
그렇지만! 호모 날레디라는 인간 이전의 새로운 종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문화로 ‘호모‘ 단위의 종들의 흐름이 remarkable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놀랍다.
다만 그들의 상상력의 폭주력에 지쳐 내가 제속도로 따라가지 못한 게 문제였지.. ㅋㅎ
고고학이나, 출토 등의 다큐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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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부 내용이 떠올라 추가 작성한다.
짐승들은 송곳니가 뾰족해서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 =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짧은 송곳니를 가진 동물들은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을 미소로 본다고,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 굉장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던 기억이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