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앱에서 친구를 팔로우하고 소식을 받아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해보세요

앱에서 친구를 팔로우하고 소식을 받아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해보세요

운닝
소멸해 버릴 진실은 거짓말인 걸까
최신

바르셀로나의 유서
책
단편소설이라곤 하지만, 내용과 서술 방식을 보면 소설보단 수기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승전결이라 할만한 포인트도, 명확한 메세지나 교훈도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스펙트럼이라면 그 스펙트럼의 한 부분을 잘라놓은 듯한ᆢ 그런 느낌이다. 자기고백적인 내용이 많다. 그래선지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문장중에서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다. 특별히 어떤 메세지를 받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이유는... 내가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한 감정을 다른 사람이 글로서 풀어낸 걸 읽었을 때,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그걸 누군가가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1
0
2
0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연극 / 뮤지컬
캐스팅은 보지도 않고 그냥 낮공 예매한 건데 좋았당 극의 초반엔 이그나시오만 넥타이가 허술히 되어 있었는데, 이그나시오 외의 다른 학생들도 자신들이 살던 일상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품은 시점부터 교복의 마이나 넥타이를 벗는다.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돈파블로 학교의 체제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의 의상에 보라색이 있다. 그 색이 앞을 볼수 없는 이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돈파블로 학생들은 교복의 상/하의에 보라색이 있는데, 보냐 페피따는 구두에 있다. 그래서 극중 앞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보냐 페피따의 의상에서만 보라색이 맨 밑에 위치한게 1막에서 이그나시오가 앞을 볼 수 있는 그들은 능력이 없어도 태어나서부터 앞을 볼 수 없는 우리를 아래에 두고 있다(정확한 대사 기억x남ㅠㅠ)고 한 말을 시각적으로 암시한 듯 보였다. 물론 극에서 보냐 페피따가 학생들을 직접적으로 까내리는 대사는 없다. 하지만, 앞이 보이는 보냐페피따가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본인이 옳다는 듯 길들이려는 모습이 그 자체로 오만한 면이 있지 않나 싶었다. 우린 불쌍한 장님이라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그나시오를 다른 학생들은 비관적이고 병들었다고 표현했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이그나시오는 사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행복에 다가가기 전에 서로의 슬픔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길 바라는 마음이 다른 학생들에게 닿지 못했단 것 같다. 본인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듣는 '지금 당장 즐겁자'는 말이 얼마나 버겁고 외롭게 느껴졌을 지. 극에서 나타나는 대립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일과 아픔을 인정하는 일을 너무 양극단에 둔 탓인 것 같다. '굳이 아플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대사가 몇번 나왔는데, 까를로스와 후아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은 아픔과 동시에 희망도 준 듯 보여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학생들은 보냐 페피따에게 말할 때 항상 말 끝에 깍듯이 보냐 페피따를 붙인다. 근데 극 후반까지도 여러 명이어도 한명이 말하는 듯이 잘 맞다가, 마지막에는 당차지도 잘 맞지도 않아서 이런 것도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와 꼭 맞는 세상에서 슬픔을 잊은 채 즐거워하는 것과 유동적인 세상에서 계속 아프더라도 희망을 바라보는 일 대부분 문제들이 그렇듯 무엇이 맞다 하진 못 하겠지만 슬픔 없이는 희망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적었는데 자세히 뭘 느꼈는 진 모르겠다ᆢ... 최석진 배우님 발성이? 뭔가 아쉬웟다.. 그치만 막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긴 함
3
0
4
0

스포일리아
영화 / TV
진짜 모르겠다... 좋긴 좋았는데 뭐가 좋앗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궁금한 점은... 여주인공인 박은 남주인공 김이 죽은 상황에서, 그 후로도 혼자서 여행을 계속할 지가 궁금하다. 혼자서라도 우주의 비밀을 향한 여행을 하기 vs 우주의 비밀을 알지 못 했지만 이 넓은 우주에서 혼자일 바에 죽기... 에서 박의 선택이 궁금하다. 김과 박이 그토록 '입'이 말해준다는 '모든 것'을 거부한 이유가 뭘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아마... 두 주인공은 우주의 비밀이란게 입이 해줄 말로, 심지어 영화에서는 속닥속닥속닥으로 끝나버린 겨우 몇마디로 치부되는 아주 사소한 것일 거라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면 김과 박,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는 오랫동안 몇세기에 걸쳐 그 비밀을 알기 위해 끝없는 생각과 그 기록을 남겨왔기 때문이다. 그 장대한 노력의 과정을 겨우 몇문장의 말로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끝내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목표가 있고, 그걸 쫓아가는 일은 가끔 그 과정에 있을 때보다 끝을 보고난 후의 허무를 견디는 일이 더 괴롭기도 하니까. 우리가 세상에 나고 죽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유를 알면 삶의 의미가 없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영화의 초반에서 나온 대화 중 우주는 왜 생겨났는지 궁금해, '어떻게'가 아니고 '왜'가 꽤 중요한 말이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왜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생각할 만한 문장인 것 같다. 왜 사는 지는 평생 알 수 없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고민하는 일ᆢ 30분 동안의 복잡한 내용 끝에 마지막에 남은 문장은 고작 각국의 '안녕하세요'와 '세상은 졸라 시끄럽다'였다. 그게 다일지도 모른다. 왜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서로 안부를 묻는 일이 삶의 전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치만 생각할 수록 좋은 영화같다. 겨우 30분 남짓한 영화가 어떻게 이렇지... 재밌었다.
1
4
14
0

Life of Pi
연극 / 뮤지컬
연극? 처음 봤는데 일단 너무 신기했다 화면 전환을 이렇게 슉슉 하는 게 진기명기같아 나는 가만히 있고, 무대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상황인데도 이야기 속에서 시간과 장소를 전환하는 데에 있어서 이질감이 크게 안들어서 그게 신기해 그리고 왜 사람들이 윗좌석에서도 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음 내가 위에서 봤는데 조명으로 구현해낸 바다 연출이 배랑 어우러져서 너무너무 신기했어 한편으로는 배우?분들 너무 힘드실 거 같음 리처드 파커 맡으신 분들은 허리 너무 아플 거 같애 파이 역도 감정전환의 폭이 큰데 그 전환되는 과정의 시간은 아주아주 짧아서 그게 어려울 것 같았고 또 계속 소리지르고 몇번씩 울어야하고... (물리적으로) 들려야하는 장면, 싸우는 장면도 많아서 체력소모 짱 클 거 같아 이제 스토리 얘기. 왜 파이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준 걸까요?? 그것도 서로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고 행위의 주체만 바뀐 탓에 서로 맞물리는 부분이 많은 두 이야기를? 나는 이게 궁금해... 둘중 뭐가 진실이냐는 사실 크게 궁금하지 않아. 보편적으로 생각? 해봤을때는 후자의 이야기가 더 말이 되는 듯하지만 그러면 앞에 동물원 이야기가 들어갈 이유가 없어지지 않나ᆢ? 그리고 파이가 전자를 설명할 땐 엄청엄청 몰입하며 생동감있게 이야기 했는데, 후자 할 땐 남얘기 하듯 덤덤했어ᆢ 근데 또 전자 얘기에서 중간중간 파이의 주변 인물들이 환상처럼 나오는 건 말이 안되는 연출이기는 해ㅠㅠ 또 제일 이해 안 되는 게ᆢ 전자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 후자는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잖아 근데 후자의 이야기에서도 리처드 파커와 함께 있던 거 아냐? 이해가 안 되네ᆢ 그리고 오카모토와 간호사는 왜 전자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제발 진실을 말하라고 그렇게 닦달을 했으면서 두 이야기 모두 듣고 난 후에는 전자의 이야기가 좋다고 한 걸까? 사람이 사람을 먹은 것보다는 동물이 사람을 먹은게 나아서 그런 걸까? ᆢ... ㅠㅠ 모르겠어 해석 찾아봐야겠음 +251230 / 리처드 파커는 처음에 ..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파이가 사랑한 동물을 죽였지만 후에는 파이의 버팀목이 되었다ᆢ 신도 누군가에겐 원망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겐 버팀목이니까 신을 믿듯 파커를 믿은 것 아닐까... 그게 아니고, 리처드 파커가 상상이라면 주변의 모든 것을 투영한 존재가 파커였을까? 엄마, 아빠, 라니누나, 파이가 믿은 종교들, 파이가 사랑한 동물들, 파이 본인까지. 그렇게 그 존재들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고, 그리하여 오카모토에게 '삶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걸까?
3
0
8
0

디어 에반 핸슨
영화 / TV
뮤지컬 원작이라 그런지 노래들이 좋았다 Waving through a window 때문에 알게 된 영화엿는데 이 노래가 시작부터 나와서 띠용햇움 솔직히 ? 에반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았지만... 나라고 살면서 한 번도 미운 짓 잘못된 짓 안했겠나 싶기도 하다. 결국 상황은 처음과 제자리인채로 끝난 것 같지만 어쩐지 주인공의 미래는 조금 더 나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삶과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겪고 있을 땐 모두 큰 사건 같고 나아지지 않을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작은 일이 되고, 그게 곧 내가 조금은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다 지나가고 나아지는 게 삶이니까, 내가 싫고 최악으로 느껴져도 달라질 미래에 대한 약간의 믿음을 주는 영화같다. +251229 / 등교하면서 포포에버 듣다가 생각남 유튜브에서 디에핸 영화에 '결국 윈위치고 바뀐 것 크게 없지만' 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달린 걸 봤었고, 이걸 꽤 오래 생각했었다. 정말 그랬다. 큰 사건이 일어났지만, 그 일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을 뿐 겉보기에 크게 바뀐 것들은 없었다. 근데 왜 이 영화가 치유의 메세지가 담겼을까, 하면 또 '작품이 띄는 내면 관점에서 보면 좋은 영화다' 라는 댓글이 생각난다. 원위치인 건 정말 겉보기의 상황이다. 에반은 새로운 도전을(가령 새 친구 사귀기라던지ᆢ) 꺼리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에반이 영화 초반에 보인 성격대로 였다면 하지 못했을 법한 일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거짓말이 시발점이었지만, 그 이후의 일들을 대하는 에반의 마음까지도 항상 거짓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짓말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For forever'에서 코너가 에반에게 다 괜찮아 라고 말해주었다는 가사가 있다. 그 말이 단순 거짓말이 아니라 에반이 나무에 오르고 떨어졌을 때 듣고 싶은 말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을 그다지 좋아해주지 않았던 코너를 절친이었다며 속이고 코너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는 허황된 상상을 하는 에반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 거짓말 속에서 모순되게도 코너를 이해하게 되는 사건들의 연속에서 에반의 내면에 얼마나 큰 파도가 들이닥쳤을 지를 생각하면 이 작품으로 인해 치유받았다는 마음들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제자리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제자리라도 숨은 트여야한다. 에반이 겪은 사건이 가라앉고 있던 에반을 숨쉬게 해준 것 같다. 에반이 조금 더 세상과 호흡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ᆢ. . ..
4
2
8
0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책
이 소설의 주인공은 수브다니 같긴 하나, 그 주변의 세상이 나에겐 인상적이었다. 그 주변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삶'에 꿋꿋이 다가가는 존재들이 있다. 설령 그 모습이 보편적인 존재들과는 아주 다른, 어쩌면 이상해보이는 형상일지라도. 그들은 소극적인 듯 보이면서도 그 꿈을 놓지 않는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은 소외되어 보이지만 어쩐지 다채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녹슬고 싶다는 수브다니의 바람을 계속 곱씹다가, 출처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사랑은 비효율이다. 솜솜 피부숍의 사장은 소설 말미의 수브다니를 보고 벌써 다 녹슬어 버렸다며 진저리를 쳤다. 금속의 몸으로 물에 잠겨있는 것은 분명히 비효율적이다. 금새 녹슬어버릴 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것이 수브다니의 바람이었다면? 녹슬어버리는 게 아닌 기어코 녹슬고야 마는 것이었다면. 꼭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도 어떤 이상, 종착지를 바라는 마음이 수브다니를 비효율적으로, 낡은 모습으로, 약간은 삐걱이는 모습으로 향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간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2
0
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