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공개 ・ 06.18

2026.06.17 (Wed)
인류 멸망이라는 뻔하고도 진부한 환상과 사랑에 빠진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끝끝내 인류가 가진 인간성(과연 실존하는 것일까?)과 사랑에 걸고 있던 일말의 기대를 떨치진 못했다. 양가적 감정 속에서 나는 때론 혹독한 인간불신을 보이는 염세주의자였고 한편으로는 사랑이 이 세상을 구할 거야! 하고 외치는 마법소녀 지망생이었다. 물론 그것도 다 지난 일이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생각에 지쳐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가던 지금 인류 멸망을 논하는 두 작품, <삼체>와 <진격의 거인>을 함께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 크나큰 행복이자 지나친 축복이었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작품이! 늘상 콘텐츠가 부족하다, 재미있는 거 없나, 말을 달고 살던 나에게 드디어 최고로 잘 맞는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한꺼번에 두 개나. 이 순간 나와 책,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세 개의 비성이 되어 삼체를 이루고 있다. <진격의 거인>의 지크 예거는 '에르디아인 안락사 계획'을 세운다. 거인이 되는 유전자를 타고나 전 세계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에르디아인의 유전자를 막는 것이다. <삼체>에서 삼체 세계의 원수도 1379호 감청원에게 말한다. 지구인은 삼체 세계의 지배 아래에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다만 출산은 제외하고. 책의 398쪽을 읽으며 나는 전율했다. 재생산을 막음으로써, 후대를 끊어버림으로써 멸망하게 만들겠다는 그들의 배려에 감응해서 옐레나의 말을 들은 아르민처럼 엉엉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만 싶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를 냅다 몰살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남은 시간을 허락하는 너그러운 마음! 친구들은 내가 벽 안의 인류가 아닌 거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웃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인류가 아닌, '우리'가 아닌 이들의 시각으로 '우리'를 보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것이 거인이든, 외계 문명이든. 이것은 내가 나로서, 인류의 일원으로서 언제까지나 견지하고 싶은 태도이다. 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인류의 자의식 과잉은 너무너무 비대하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당장이라도 블랙홀이 될 정도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을 알지만 우리 인간은 너무 인간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다른 종의 생물에 대해서 특히 그렇다. 책에 등장하는 에번스도 그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었다. 예원제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악행에 환멸이 났다면 에번스는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타자화, 나아가 무관심에 역겨움을 느낀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에번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류를 인류 바깥에서 이해한 결과로 멸망을 꿈꾸는 삼체 조직에 큰 동질감을 느꼈다. 비록 그 안에서도 종교적 조직인 구원파가 생겨난 걸 보며 금방 반가운 마음을 반쯤 접어야 했지만…. 이해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이다. 전엔 상호 이해를 통해 '우리'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많은 사람이, 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우리'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범위가 넓어질 때 차별과 혐오, 갈등도 줄어들 수 있을 테니까. 언젠가부터 좁힐 수 없는 간극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범위는 유지만으로도 힘들었다. '우리'끼리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싸우는 판에 '우리' 바깥의 이를 '우리'로 만드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이해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푹 꺾였다. 지난한 피로 속에서 얼마나 오래 무감한 시간을 보냈을까? 이해라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무지하고 무식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이해보다는 차라리 머리도 마음도 비우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훨씬 쉽다는 사실도 깨달았지만 많은 이들은 그조차 어려워한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내가 ‘우리’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라 여겼던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가 사라진 세상을 다시금 바라게 된 것도 이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두 작품으로부터 얻은 가장 크고 충격적인 깨달음은 우주에 대한 것도, 인류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 자신에 대한 것일 뿐이다. 나의 꿈, 잃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내 꿈을 인지하니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한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연구대상인 거인에 진심 어린 애정을 갖고 탐구하는 사람이어서이다. 내가 예원제를 동경하는 이유는 그가 내가 늘 우러러만 보던 천체물리학에 정통하여 기어코 외계 문명과 소통하고 나아가 인류 멸망의 초석을 다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느 학문에 정통한 것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때늦은 깨달음에 충격을 받았으나 지금의 나는 무엇이든 물끄러미 바라볼 줄 아는 사람.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울 줄 아는 가여운 어른! 잃어버린 꿈을 기억해내고 눈물 흘리는 것도 너무 어른스러워서, 사회에 잘 편입한 어른다워서 씁쓸해졌다. 역시, 나는, 너무 슬프고 불쌍한 ‘우리’는, 아무래도 멸망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