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공개 ・ 06.21

2026.06.09 (Tue) ~ 20 (Sat)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기대도 안 했는데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 유쾌하진 않다. 그렇지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는 그날까지도. 다만 그전에 에렌, 네 마음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너와 네 친구들은 알고 있는지. 왜 나에게는 너를 이해할 행운이 주어지지 않는 걸까? 너를 사랑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면 이 고통스러운 애니메이션을 두번 세번을 봐서라도 너를 사랑하고야 말겠다. 너무 많은 이들에게 마음을 허락한 나머지 다 보고 난 이후에 내 마음은 너덜너덜 형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중에서 가장 사랑한 게 한지라는 걸 이런 식으로 확인당하고 싶진 않았다. 스포일러 당하기 전부터 결국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정말 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너무너무 좋아했는데... 그렇지만 마지막도 너무 한지다워서 방이 떠나가라 울면서도 자꾸 웃고 싶었다. 동료들을 위해서, 멋진 엔딩을 맞이해서, 엘빈과 모블릿을 다시 만나서, 당신은 행복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런 당신을 사랑해서 나도 행복했으니까. 우린 너무 다른 세상에 사는 데도 참 닮은 점이 많았다. 나는 지크의 에르디아인 안락사 계획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하고자 하는 아르민의 주장에도 동의했다. 자꾸만 과거를 되돌아보며 괴로워하는 라이너의 등을 두드리고 싶었고 매번 자신없는 결단을 내려야 했을 장의 어깨를 감싸고도 싶었다. 미카사와 같은 사랑을 하고만 싶었고 한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연구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사랑하다 못해 자꾸만 나를 투영하게 만드는 잔인한 작품이었다. 나는 아직도 인류 멸망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결말에서 남은 20퍼센트의 인류가 대치하는 것을 보며 그 꿈이 약간 더 굳어진 것도 같다. 나는 여전히 <진격의 거인>과 <삼체>가 나와 생각을 같이한다고 본다.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으니 멸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다만 두 작품 모두 나에게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자꾸 기대하게 되고 믿고 싶게 되잖아. 인류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평화로울 미래가 언젠가 먼 미래에는 있을 수도 있다고. 자꾸만 자꾸만 인간에게 기대하게 만드는 게 나는 너무나도 괴롭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정신 나간 작품에게. 나는 이제 절대 이것을 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