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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6.21

2025.06.20 (Fri)
반지성주의에 기댄 채, 냉철하고 공정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많다. ‘라떼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1-2학년 때는 <에브리타임>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었던 기억이 있는데, 복학하고 나서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대충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에브리타임>에 혐오와 조롱, 폄훼가 난무해서 어떤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지 않게 된 것이. 나임윤경 교수님의 강의가 정말 듣고 싶었다. 사실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또 4학년 때 문화인류학에 기웃거린 것은 나임 교수님 덕분도 있었는데 마침 2019년에 안식년이셔서 결국은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못하고 대학 바깥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물론 정말 존경하는 김현미 교수님(선생님)의 강의도 듣지 못했고.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두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자 했는데 두 번이나 면접까지 가놓고 떨어졌다. 그땐 두 번이나 떨어진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교수님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도 같다. 그래도 필드워크에 조장으로 참여하고 학부 강의도 듣고 했던 걸 좋게 봐주신 덕분에 두 번이나 면접까지 갈 수 있었다고, 지금은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튼, 그런 선망의 대상인 나임 교수님이 학생들과 쓴 책이라니. 너무나 읽고 싶었다. 실제로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에브리타임>에 올린 글을 엮어 만든 책이라서 더 궁금했다. 내가 ‘진짜로’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학교가 궁금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19년에 이미 <에브리타임>은 오염되고 있었는데 23년에는 얼마나 더 지저분할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에브리타임>에 글을 쓰면서 악의로 가득한 말에 큰 상처를 받진 않았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그런 걱정은 서서히 누그러졌다. 아, 그래도 희망이 있구나. 이 책에 이름을 올린 학우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다른 학우들과, 우리가 있구나. <사회문제와 공정>을 들은 학생들은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올곧고 단단한 마음의 심지를 갖고 있었다. 여성과 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혐오, 학벌주의, 기후위기 등의 의제에 대해 몇몇 사람들(주로 ‘이대남’들)은 ‘언더도그마’라고 말한다. PC주의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작금의 이런 혐오와 조롱, 멸시와 폄훼는 공정함, 냉철함, 객관성, 이런 말로 포장된다. 그렇지만 묻고 싶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외면하는 게 정말 공정한 것인가? 녹아내리는 지구를 못 본 척하는 게 정말 냉철한 일인가?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 왜 문제인가? 왜 공정하다는 말로 선하기를 거부하는가? 실제로 나임 교수님과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에 상주하는 듯한,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기껏 들어와 놓고 반지성주의로 열 손가락을 휘감은 이들에게 묻는다. 청소노동자를 고소한 연세대 학생들에게, 비건인 학우를 유난이라 말하는 학생에게, 여성혐오는 없다고 주장하는 남학생들에게. 윤석열은 탄핵되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이준석은 이번 대선에서도 낮다고만은 볼 수 없는 지지율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여당이 되었으나 차별금지법에 대해 회의적이다. 트럼프가 또다시 대통령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 아직 전장연의 시위는 끝나지 않았고 여성들은 구조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이상 기후는 점점 빈번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퀴어 퍼레이드는 올해도 개최되었다. 고공 농성을 하던 노동자는 땅을 밟았고, 사람들의 죽음을 방관하던 대기업은 수색에 들어갔다. 여성, 성소수자, 나와 내 친구들은 여전히 잘 살아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무지개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