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앱에서 친구를 팔로우하고 소식을 받아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해보세요
전체 공개 ・ 08.05

2025.08.04 (Mon)
(앞부분 생략) 글쓴이는 미국 뉴욕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를 거쳐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공유한다. 정신과 의사로 그는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 다른 의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글쓴이를 의사 선생님으로 대하기도 했고 종종 아시안 이민자로만 대하기도 했다. 그 역시 환자들을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다가 반성하기도 하고, 자신이 당한 인종차별에 공감하지 못하는 교수로부터 상처를 받다가도 공감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동료로부터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공감에 대한 것이었다. 단순히 내가 타인이 겪는 어려움과 유사한 것을 겪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게 생각하고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나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도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글쓴이가 의사로서, 이민자로서, 한 아이의 부모로서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공감할 수 있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아닌 환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동성애자, 조현병 환자, 노숙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공감은 단순히 상담사나 의사들에게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지금도 너무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인종, 다른 성별과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고 너무 쉽게 혐오한다. 중국인, 조선족, 여성, 트랜스젠더, 노인, 아동, 장애인…. 다르다는 것이 조롱과 차별의 이유가 된다, 너무너무 쉽게. 글쓴이는 공감에 대해 무한히 강조함과 동시에 한국에서 정신과와 자살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임에 개탄한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른다. 글쓴이가 브런치에 그 글을 올린 지 5년도 더 지났음에도. 내가 죽지 못한 이유는 사실 행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성공한 뒤 나와 그보다도 남은 가족들에게 씌워질 낙인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 죽는다면 좀 다를까?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여전히 두렵다. 이제는 덜할지라도, 종종 생각나면 고개를 저어버리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프레임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신병자, 자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손가락질, 시선. 나는 여전히 내가 정신병자임을 알리길 꺼린다. 아마 앞으로 오랜 기간 더 그럴 것도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매일 아침 항우울제를 먹고 매달 정신과에 정기 검진을 다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날이 오길. 그때까지 살아 있길. 그래야 우리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오래오래 살다가 나중에 그곳에서 만날 때, 언니가 보지 못했던 것들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다 좋았더라고 이러했더라고 말해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