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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8.21

2025.08.20 (Wed)
아 진짜 너무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순수하게 재미만을 느낀 책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명왕성을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강등시킨 장본인이자 이 책의 글쓴이인 마이크 브라운은 단순히 명왕성 킬러가 아니었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유쾌하고 로맨틱한 천문학자였다. 나도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행성이 명왕성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일 좋아하던 여신이 아르테미스였다면 제일 좋아하던 남신은 하데스였다. 그래서였기도 했고, 왠지 저 멀리 떨어진 작은 행성에 마음이 간 것도 있었다. 천왕성, 해왕성 저 너머 저 멀리에 있는 아주아주 작고 추운 행성. 신비하고 특별해 보였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도 그래서 명왕성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명왕성이 이제 행성이 아니랬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아니라 수금지화목토천해에서 이제 끝나야 한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괜히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등교했지만 하루 온종일 명왕성 생각을 했다. 집에 오는 길에도 그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른이 아니어서,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 목록에서 퇴출되는 걸 막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었다. 그러나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명왕성을 죽인 장본인이 쓴 책을 읽고 있자니 그 모든 결정이 납득이 갔다. ‘행성’의 개념과 정의를 바로 잡기 위해서 자신이 발견한, ‘열 번째 행성’이 될 수도 있었던 그 별의 지위도 같이 낮추었다. 속이 쓰릴 법도 했을 텐데, 그는 시종일관 자신이 생각하는 ‘옳음’을 견지했다. 당시의 회고록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책에서도 그는 아쉬움을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다. 책에서 그는 진심으로 제나가 에리스로 변경됨에 기뻐했고 그게 옳다고 믿었다. 나는 그 점이 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멋진 면이라고 생각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힘. 나도 이렇게 단단한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하며 동경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밖에도 글쓴이는 여러 방면에서 참 호감이 가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일단 400여 쪽 가까이 되는 책 한 권 내내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었고, 글을 굉장히 흡입력 있게 쓰는 사람이었다. (물론 번역도 한몫 했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였다. 그가 지금의 아내 다이앤을 만나 연애하게 된 순간부터 결혼, 피튜니아(릴라)의 임신 이후 준비 과정, 그리고 릴라가 태어났을 때까지 전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그는 천체 X부터 산타, 제나, 이스터 버니까지 4개의 별을 발견한 과정 틈틈이 그와 그의 아내와 딸의 일상도 전해 주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그 가족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었다. 다이앤과 릴라는 우주의 모든 별을 다 준대도 그가 바꾸려 들지 않을, 마이크 브라운의 가장 빛나는 두 별임에 분명했다. 어릴 때 상상한 나의 미래 중에는 우주비행사는 없었어도 천문학자는 있었다. 지금 이 별, 지구에서의 나는 비록 아니지만 이 우주 어딘가 다른 별에 다른 세상에 또 다른 내가 있다면 마이크 브라운 같은 그런 천문학자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