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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9.03

2025.09.02 (Tue)
책 <해저 2만 리>는 내 먼 기억 저편의 책이었다. 어릴 때 동화책으로만 봤었고, 그마저도 시큰둥해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구리 헬멧을 쓰고 물속을 걸어 다니는 사람의 삽화였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심장이 뛰었던 부분은 네모 선장이 아로낙스 교수를 해저 숲으로 안내했을 때였다. 그때 처음으로 구리 헬멧에 대한 묘사가 나왔는데, 당황했던 아로낙스 교수와는 달리 나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관념 속에만 존재하던 구리 헬멧. 대왕오징어보다도, 야만인(이 표현이 참 싫다)과 남극보다도 더 내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해저 탐험은 구리 헬멧의 삽화 형태로 내 깊은 마음 속에 언제나 있어왔던 것이다. 언제나 바다를 동경해왔다. 배를 타면 종종 멀미를 하면서도, 바닷바람의 찝찝함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먼 푸른 물결과 하얀 파도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바다를 향한 일렁이는 마음은 어디서 온 걸까? 그렇지만 나는 바다와 물의 속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물에서 생명력을 떠올릴 때 나는 물이 가진 죽음의 이미지를 연상해낼 줄 아는,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좀 음울한 면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뛰어든다면 물속이었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그럴 운명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바다와 먼 동네에서 살고 바다와 먼 곳에서 일을 하며 바다와 상관없는 일을 한다. 그런 나에게 아로낙스 교수와 네모 선장의 바닷속 여행은 다시 물을 향한 열망을 부추기는 촉매가 되었다. 책을 읽는 나흘간 나도 노틸러스 호에서 교수와 함께 연구 일지를 썼고 콩세이유와 함께 수많은 생물을 분류했다. 가끔 네드 랜드처럼 육지를 그리워했고 네모 선장처럼 바다를 사랑했다. 사실 네모 선장은 사랑보다는 증오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그의 비밀은 영영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바다 깊은 곳에서 노틸러스와 함께 마음의 평화를 누리길 바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읽는 내내 기계 번역의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옮긴이가 기재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읽는 내내 통일되지 않은 인명(네모 선장, 선장 네모와 콩세이유를 꽁세이유라고 적는 등)이 특히나 의심스러웠다. 뭐 자잘한 오타야 모든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거라지만 왠지 유독 미심쩍었다. 휴먼컬처아리랑 출판사에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런데 지금 노트북 인터넷이 또 말썽이라 내일 해야할 것 같다. 시간도 늦었고. 독후감을 마무리하며 마침 고개를 내렸는데 내 다리에 있는 파도 타투가 보였다. 그 위에는 하와이에서 만난 바다거북 타투가 있고 저 밑에 발목에는 두 개의 조개와 한 개의 소라 타투가 일렬로 있다.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나는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난다. 얼마나 더 많은, 작은 바다가 내게로 올지, 아니면 내가 거대한 바다로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