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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9.08

2025.09.07 (Sun)
천쉐가 쓴 <같이 산 지 10년>이라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바로 소장본을 구매했을 정도로 따뜻하고 마음이 순두부처럼 몽그르르 해지는 책이었다. 그와 그의 파트너가 사는 모습을 보며 읽는 내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랑을 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 작가가 쓴, 여성 동성애를 다룬 소설집이라니 읽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읽어야만 했다. 게다가 첫 출간 당시에 검열을 통해 절판되고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구하고자 했다는 책이라니 더 궁금했다. 도대체가 어떻길래? 그러나 읽고 보니 단순히 여성 간 연애 감정이나 성행위에 방점이 맞추어졌다기보다는,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느꼈다. 4개 단편에서 모두. 네 명의 화자가 자신의 엄마로부터, 과거로부터, 또는 부정하고 싶었던 자기 정체성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한 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어나지 못해 끝내 받아들이는, 또는 기어코 사랑하게 되는 여행에 동행한 기분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나는 그들이 지겹다가도 안쓰러웠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종내에는 그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 여행 가운데에는 늘 사랑이 있었다. 여성 화자가 사랑하는 또 다른 여성에 대한 묘사는 나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피부가 곱고 느릿한 눈을 가진 그 여자를 나도 떠올렸다. 그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자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었고 손가락을 자르고 싶었고 엄마가 보고싶었다. 나도 모르는 여자에게 입 맞추고 싶다가도 그냥 냅다 도망치고 싶었다. 읽으면서 약간의 우울을 즐기기까지 했다. 화자들이 보는 환각과 기억에 나도 도취되기도 했다. 책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키고 싶었다! 그러면 그 여자들의 냄새를 맡을 수라도 있을 것처럼. 이상한 먼 과거와 미래, 지금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발견하는 나와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