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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9.11

2024.12.20 (Fri)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지만 만약에 그 한 권의 책이 진은영 님의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면 어떨까? 그는 참된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뛰는 책… 목차 하나하나에 귀한 문장이 있는 책… 머리말에 있는 “좋은 작가는 아첨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에 꽂혀 읽었는데 너무 사랑하는 책이 됐다. 나는 따스한 말보다도, 누군가가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섬세함과 다정함을 느끼는 것 같다. 세상에 퍼져 있는 고통을 똑바로 보면서도, 세상에서 자꾸만 꿈틀대는 사랑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는 자세에서.
인류에게 공통적 처참함을 만들어내는 몰개성적인 힘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몰개성적인 사랑뿐이라는 뜻이다.
150p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의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머리말
그러나 이탈리아 철학자 바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이 구분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상 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세계가 불확실하고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우리는 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특정 대상을 위험한 것으로 지정해서 모호한 고통을 확실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저 동양인은 걸어 다니는 바이러스야.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만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 거라는 감정적 방어책을 만들어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하게 된다.
53p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문학의 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61p
또 이 모든 기적과 감사에도 불구하고 너를 자주 엄습하는 우울에 대해서 조금 너그러워지게 될 거야. “심장에 박힌 감상적인 돌멩이 때문에/ 한 번, 또 한 번,/ 자꾸만 밑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았더라면”(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안경원숭이」) 더 좋았을 테지만…… 매번 그러고야 마는 존재, 그게 바로 너다. 심장에 박힌 건 돌멩이가 아니라 씨앗이었거든. 네 영혼의!
93p
그러나 카뮈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 이어가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대신 위대한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3p
계속되는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사랑 아닌가…… 친지들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며 자책하지만, 베유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랑을 지키는 겁니다.’
148p
그러나 세상의 아이들아,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하는 삶은 불행할 거라는 협박에 굴하지 말고, 혼돈을 기꺼이 맛보며 천천히 네 자신이 되어라. 남이나 스스로에게 자신의 성과를 증명하려고 서두르지 마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우리를 향한 그의 다정한 전언이다.
21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