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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9.12

2025.09.11 (Thu)
내 마지막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몸과 마음이 내 것 같지 않을 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을 만큼 괴로울 때. 책에서는 미국 오리건 주의 조력 사망법에 대해 다룬다. 흔히들 안락사, 존엄사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 또한 자살이라고 보는 그런 죽음에 대해. 하지만 조력 사망법은 꽤 엄격하다. 여명이 6개월 이하로 남은 환자이고, 스스로 조력 사망을 선택할 정도로 정신이 온전해야 하고, 치사 약물을 스스로 투여해야 한다. 약을 마시든가 하다못해 약물을 주입하는 버튼이라도 눌러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원해도 죽을 수가 없다. 책이 나오던 때는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손에 꼽게 오리건과 워싱턴 주(州)가 조력 사망법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이 조력 사망에 반대한다고 했다. 가톨릭계가 그랬고, 의료인 중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그랬다. 그로부터 10년도 안 지난 지금, 특히나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고 온갖 비인간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실천하는 지금, 조력 사망에 대한 논의가 유의미하게 진전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겠냐고. 서로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고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조력 사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려면 10년이 뭐야 20년은 더 기다려야 하지 싶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안락사나 존엄사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2017년 할아버지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이듬해 3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때 또 한 번. 특히나 할머니는 진통제를 비롯한 많은 약이 듣지 않아서 너무 힘들어하셨기에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는 차라리 하루빨리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물론 그때 한국에서 조력 사망법이 통과되었다고 해도 두 분이 정말 조력 사망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상태가 호전된 사람들의 사례를 읽었을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럴 권리를 누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때 이른 죽음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이 지나친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노화로 인한 병으로 고통받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당연한 것이 된 지금, 심장마비로 죽는 것은 차라리 호상이며 자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말도 놀랍지 않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고민하는 만큼 이제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 죽음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그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