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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9 (Mon)

대학 2학년 때,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분노의 게이지’ 활동에 참여했었다. ‘참여했다’고 하기엔 조금 부끄럽지만 일단 활동을 시작했다. 중고등학생 때 탐독하던 여러 인문학 책으로부터 차별과 불평등을 큰 문제로 인식한 나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과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었다. 그 물결을 타고 나는 여성을 비롯한 여러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차별 문제를 공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 첫 발걸음이 분노의 게이지 활동이었다. 다만 같은 해 인지한 나의 깊은 우울 때문에 한국여성의전화 측에 말도 못하고 발을 빼게 되었다. 그렇지만 잠시나마 그 활동 덕분에 대한민국에 가까운 사이의 남성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이, 특히나 가정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처음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남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아빠는 자상한 편이었고 가족에게 손을 든 적이라고는 없었다. 나와 동생을 혼내거나 엄마와 말다툼을 할 때에도 아빠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정말 몰랐다. 그렇게 많은 여성이 아버지, 남편, 형제, 아들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정말 안전한 우물이었고 나는 우물 바깥에서 죽어가는 여성들은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책에서도 남편으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하고 쉼터를 찾은 여성들은 스스로 ‘생존자’라고 일컫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여덟 명의 생존자들은 실제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남편의 폭행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지난한 이혼 소송 후 자유의 몸이 된, 또는 쉼터를 찾은 후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은 그들은 마지막 부분 인터뷰에서는 모두 그 누구보다 강렬한 삶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가정보다, 아이들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함을 깨달은 여성들은 후련하고 희망차 보였다. 남편들에게 맞으면서도 가정을 포기하지 못한 그들의 과거는 지난 일일 뿐이었다. 여성들의 앞에는 더욱 빛나고 즐거울 일만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남성들, 특히 청년 세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와 지나친 자기 연민으로 여성들을 향해 점점 더 과격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청년 여성들 역시 페미니즘을 방패 삼아 다른 여성 집단을 공격하고 배척하는 사례가 점점 더 많이 보인다. 이와 더불어 여성이 아닌 다른 소수자, 특히 이민자와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은 같은 인간으로서 더 봐주기도 힘들 지경이다. 어쩌다 대한민국 사회가 10년 전보다 더욱 추한 몰골이 되었는지, 종종 허망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여전히 고통받는 우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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