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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11.15 ・ 스포일러 포함

2025.11.14 (Fri)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가도 사랑은 수많은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 완벽한 사랑은 없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사랑이 아닐 수는 없다고 말하는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느끼는 감정, 나의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 무덤덤하게 말하는 영화.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달리 나는 데이비스가 느낀 감정을 확신할 수 없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정말 데이비스는 줄리아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줄리아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데이비스가 깨달은 것이 사랑이었을까? 배신감이나 분노가 아니라? 그렇다면 어째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깨달은 사랑이라면 진정한 사랑일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번엔 보이지 않았던 사랑이 눈에 띄었다. 데이비스와 캐런, 데이비스와 크리스의 사랑이 그것이다. 성애와는 거리가 있지만 이해(보다 정확히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봄’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것)를 기반으로 한 사랑. 캐런은 데이비스의 편지를 읽고 그 속에 숨겨진 데이비스도 모르던 슬픔을 찾아내서 눈물을 흘렸다. 데이비스는 캐런의 아들 크리스를 스스럼없이 대하며 오히려 크리스에게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느낌을 주었다. 데이비스가 줄리아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캐런과 크리스와 함께 주고받는 감정으로 줄리아를 향한 사랑과 상실감을 묻어두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의 힘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4년 전에 데몰리션을 보고 나는 이렇게 썼다. “영화에서 캐런이 듣는다고 한 그룹 하트의 Crazy on You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사랑을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 속에도 사랑이 있다고. 사랑하는 동안에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종종 내가 그러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수 있다고,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사랑을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 속에 사랑이 있다니, 참 낭만적인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고. 4년 만에 영화를 다시 보며 제법 무감해진 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