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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11.24

2025.11.23 (Sun)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리라!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신탁'이다.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델포이 신탁을 듣고 맹신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 유명하고도 충격적인 예언을 보고도 '안 믿으면 그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10살도 안 되어 제법 당돌한 생각을 하던 어린이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나서는 친구들이랑 심심풀이로 본 사주를 몰래 마음에 담아두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까지 들은 내용들을 종합하고 공통되는 지점이 있으면 그건 정말 내 운명 같았고, 조금이라도 고개를 갸웃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맹신을 했다. 어리고 순진하던 때보다도 오히려 사회에 물들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 이후에야 오히려 신탁에 이끌리는 것을 보면, 신탁이야말로 종교에 버금가는 문화적 산물이 아닐 리 없다. 책을 읽으며 우선 좋았던 것은 여러 한국 설화를 톺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바리공주나 심청 이야기와 같은 유명한 설화는 물론이고 지역별로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청정각시 이야기, 천연두에 대한 공포로부터 비롯된 손님굿이나 제주 지역만의 고유한 설화는 콤플렉스적인 재해석이 아니더라도 정말 흥미로웠다. 물론 이를 심리학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도 좋았다. 한편 글쓴이는 꽤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신탁 콤플렉스를 바라보기도 한다. 글쓴이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무속인의 시초이자 저승신인 바리데기이다. 바리데기는 불안과 신탁의 고리에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으나 역경과 고난을 딛고 죽음으로부터 돌아온다. 글쓴이는 바리데기를 오이디푸스와 완벽히 다른 선상에 둔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부터 2대에 걸쳐 신탁을 피하려다 오히려 정면으로 신탁을 직면하게 된, 전형적인 신탁 콤플렉스적 인물이다. 반면 바리데기는 신탁에 구애받지 않는 인물로,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반-신탁 콤플렉스를 지닌 '여성'이다. 이후 등장하는 많은 여성 인물은 신탁 콤플렉스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반면, 글쓴이가 조명한 남성 인물(오이디푸스나 정수남, 철원이 등)은 그렇지 못하다. 하물며 남성으로 패싱되는 아기장수도 그렇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신탁-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특히 오이디푸스나 철원이 같은 경우 이를 피하려고 애를 썼으나 결국 예언과 같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에서 더욱 대비된다. 글쓴이는 오이디푸스를 차용한 프로이트 역시 자신이 그 자체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였음을 지적하고 지금껏 이어져오는 남성 중심 사회의 변두리를 파헤친다. 그곳에는 오히려 변두리에 존재했기에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여성들이 있었다. 글쓴이는 또한 맺음말에서 바리데기와 심청, 가믄장아기와 자청비를 다시 언급하며 이들처럼 신탁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이 되길 권한다. AI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도 사실 우리는 신탁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챗지피티에게 사주를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오하아사(일본의 아침 별자리 운세)가 유행이다. 대학 입시나 취업이 걸리면 많이들 사주나 신점을 보고, 하다 못해 타로 카드라도 보러 다닌다. 다만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책에서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호모 루덴스'답게 신탁을 일종의 놀이로써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신탁이 일종의 유흥 콘텐츠가 된 것이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정말 너무 많이 폄훼되고 곡해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귀신같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신탁과 무속신앙이 앞으로도 그 자리를 견고히 지킬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은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신탁을 콤플렉스로 삼아 스스로 옭아매기 보다는 나 자신에게 내재된 불안과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써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