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공개 ・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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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5 (Thu)

신선한 소재와 대비되는 촌스러운 문체와 또 그만큼 낡은 가치관이 담긴 책이었다. 신라와 페르시아의 연결 고리를 조명하며 그 안에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정말 좋은 시도였다. 실제로 재미도 있었다. 그린 듯 익숙한 월정교 앞에서 신라 공주와 마주 보는 낯선 페르시아 왕자의 얼굴을 그려보기도 했고, 아비틴과 페리둔을 향한 프라랑의 사랑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사대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국내 역사관에 대해 희석과 현철처럼 분노하기도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으며, 당장 10분 거리에 있는 테헤란로를 떠올리며 웃기도 했다. 다만 코로나 이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나왔으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왠지 촌스럽고 낡은 문체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당황시켰다. 아동 청소년 도서를 읽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너무 단조로웠던 게 가장 크게 작용했다. 나는 사랑을 느꼈다, 눈물을 흘렸다, 같은 감정에 대한 언급보다는 조금 더 유려한 문장이 보고 싶었던 것도 같다. 아니면 내가 너무 (천선란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 한국 소설의 문체에 익숙해져 있는 것일 수도…. 하지만 번역체랑도 뭔가 달랐다. 작가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촌스럽다거나 유치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문체였다. 문장들이 지나치게 단순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작가의 페르시아와 한국 내 다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과 너무나 대치되는 아랍-이슬람, 그리고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이었다. 페르시아 문화와 사람들을 비롯하여 ‘다름’을 포용할 줄 알았던 신라 사회를 톺아보면서 다문화에 여전히 소극적인 현대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건 좋았다. 다만 신라 공주와 결혼한 페르시아 왕자의 후손(솔직히 주인공이 이들의 후손이라는 설정도 너무 유치했다)의 입장에서 글을 쓰다 보니 페르시아를 추켜세우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악마화가 너무 두드러졌다. 물론 현대 이란의 이슬람 국수주의가 비판받을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등장하는 또는 언급되는 여성들을 그리는 것에 너무 뻔했다. 악독하고 표독스러운 측천무후와 양귀비, 아니면 순종적이고 모성애 넘치는 요석 공주와 프라랑 공주. 이런 뻔하고 지루한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묘사를 보면, 자꾸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중년의 한국 남성 작가란 어쩔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야말로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재미있게 집중해서 잘 읽었으니까 이만한 비판도 나온 거 아닐까? 정말 짜증났다면 아무 글도 쓰고 싶지 않았을 텐데. 이 책 덕분에 중동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관심이 생겼다. 집에 가면 중동과 이슬람 교양 수업 때 썼던 교재도 다시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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