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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2025.12.31

2025.12.30 (Tue)
신데렐라의 언니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 왕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외모 강박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아버지가 죽고 신데렐라로 전락한 아름다운 아그네스와, 끝끝내 그에게 느낀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가여운 못난이 엘비라. 나는 물론 아그네스도 안타까웠지만 엘비라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엘비라의 외모를 조롱하는 주변인들과 그를 부추기는 어머니, 방관하는 친동생 알마까지 사실상 진정 엘비라의 편이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마저 내면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촌충 알을 선물했다. 행복한 두 사람 뒤에 남은, 머리가 다 빠지고 발가락이 죄다 잘린 신데렐라의 언니 엘비라를 보며 미련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나 역시 외모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고 참으로 우울했다. 비뚤어진 치열, 살집있는 몸과 그에 비해 예쁘지 않은 가슴, 그리고 무엇보다 코. 그놈의 코! 하지만 나는 지금도 10여 년째 코 수술을 고민만 하는데 비해 엘비라는 과감하게 마취도 없이 코 수술을 감행했다. 엘비라는 왕자와의 결혼이라는 뚜렷한 목적이라도 있었지만 내 강박은 무엇을 위함일까? 나는 엘비라가 내심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물론 왕자와 측근들이 개차반인 걸 알고 나서는 그런 마음이 좀 가시기야 했는데... 그런 꼴을 보고도 왕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것은 무슨 마음일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어쩌면 엘비라의 외모 강박도, 사랑도 모두 환상이 아니었을까. 영화 중반까지 엘비라는 왕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책을 들고 다니며 그에 대한 사랑을 내내 되새겼다. 왕자의 별볼일 없는 인품을 알게 된 후에도 그와의 결혼을 여전히 바랐다. 그때쯤 엘비라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왔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극성스러운 어머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엘비라가 사랑한 것은 왕자라는 허상이었다. 그런데 그걸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게 헛것임을 알고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너무너무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마치 놓으면 그만 죽어버릴 것만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는 것보다는 이대로 파멸에 이르는 게 더 쉬워보일 때... 물론 엘비라는 이 정도까지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꽤나 노골적이다. 성기나 나체가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성형수술 장면이나 발가락을 자르는 장면도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그걸 굉장히 담담하게 조명한다. 등장인물들의 반응도 그닥 유별나진 않다. 그래서 덕분에 나도 조금은 침착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우울하고 슬펐다. 여성의 외모 강박은 남성이 없었더라면 높은 확률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높은 확률로 개차반이다. 기본 예절도 지키지 않고 남의 외모를 조롱하고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그런 사람들. 왕자나 귀족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이 강박은 진실로 무얼 위한 것일까? 같은 여성마저 다른 여성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 역시 남성이 우선 그러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의, 나의 외모 강박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일까? 적어도 진정으로 나를 위한 일은 아님이 확실하다. 엘비라의 동생 알마는 영화 내내 수수한 모습으로 나온다. 언니의 유별한 외모 집착에도, 어머니의 지긋지긋한 남성 편력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고 걷지도 못하는 언니를 데리고 국경을 넘을 때도 알마는 고요하다. 나는 그런 알마가 정말 부러웠다. 무엇에도 국한되지 않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