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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1.04 ・ 스포일러 포함

2026.01.03 (Sat)
좋아하는 작가와 관심사가 겹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그래서 작가를 좋아하냐 좋아했는데 우연히 그 작가와 관심사가 같냐 하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곽재식이라는 사람과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그 속에 담긴 함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한국 괴물 백과>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아는 사람이구나 했다. 평교가 주최한 온라인 북토크에서 그에게 질문했다가 받은 <곽재식의 미래를 파는 상점>을 읽을 때는 내 관심 분야에 대한 나의 견해와 그의 견해가 유사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번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를 읽으면서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건 그와 내가, 만난 적이라고는 온라인으로 딱 한 번 만난 게 다인(심지어 나만 그의 얼굴을 보고 그는 내 얼굴도 모른다) 우리가 꼭 겹치는 것 같은 느낌과도 같았다. 나의 낭만과 그의 낭만이 같은 방향성을 갖고 나의 문제의식과 그의 문제의식이 마주 보는 것과 같은 기분,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람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구나, 하고. <달과 육백만 달러>는 얼결에 싱글대디가 된 남자가 다섯 살 딸에게 엄마를 찾아주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원이가 어쩌다 태어났고, 어쩌다 친엄마를 떠나 웬 국회의원 부부를 거쳤다가 주인공에게 오게 되었는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어린 이원이에게 맞추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나, 전 애인이던 이원이의 친엄마를 찾아 딸과 함께 호주로 떠나는 걸 보면서는 갑자기 아빠가 된 것 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 노력하는 주인공이 멋지게 느껴졌다. 반면 혼자 이원이를 낳았을 여자에 대해서는 가엾다고 느끼다가 점점 호감도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우주비행사로서 달에 간 것을 보고는 아!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원이 엄마를 보며 이원이 아빠가 사랑을 느끼는 걸 보며 왠지 엄마도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악의 레이싱>은 책이 쓰인 2000년대 대학 캠퍼스와 그 시절의 풋사과 같은 사랑을 떠올려볼 수 있게 한 글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태워주겠다고 하고, 또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간 고군분투를 하는 남자. 사실 대학생이라고 하면 남자라고 하기에도 아직은 좀 어린 느낌이 (이제는) 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온갖 친구와 선배, 심지어 교수님까지 끌어들인 자전거 대작전은 사실 그 모든 걸 알고 있던 앙큼하고도 사랑스러운 ‘그녀’가 톡 쏘는 고백을 함으로써 최종 성공으로 끝난다. 자신이 매일같이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며 넘어지고 또 넘어지던 것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는 걸 안 주인공은 꽤나 부끄럽고 창피했겠지만, 이제는 여자친구가 된 그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졌을 수도 있을걸? 나 같으면 그랬을 거다. 거짓말을 한 건 괘씸할 수 있지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면 제법 귀엽잖아. 누군가가 생각이 나서 더 킥킥거리며 읽었던 것 같다. <달팽이와 다슬기>는 앞의 두 이야기에 비해 너무 마음이 아픈 이야기였다. 이 글은 2007년에 쓰였고 책은 2013년에 나왔는데 지금이야 흔하다지만 당시에는 가시화조차 크게 되지 않았던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내다니. 마침 2007년 당시 주인공과 동년배였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실제로 있었을 법도 한 일이라 더욱 울적했다. 그로부터 근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다문화가정과 그 구성원을 향한 편견과 차별이 많이 남아있음을 생각하면 정말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은 역시 2000년대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풋풋하게 읽었던 것 같다. 비록 남산에 자물쇠를 채우진 않았지만 기념일에 근처 식당에서 자물쇠와 열쇠를 나눠가졌던 내 반쪽도 생각이 났다. 1년 전 대학 때문에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벨기에 왕 앞에서 알지도 못하는 불어로 열심히 말을 하는 20살 남자애. 비록 커서 그 애와 결혼하진 않았더라도 여자친구 마음에는 평생 남을 소중한 기억일 것이다. 치기 어린 사랑은 완벽하지 않고 완성되지 않아서 그 자체로 좋다. 그래서 둘이 함께하지 않은 결말도 정말 좋았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낭만 치사량의, 정말 최고로 사랑스러운 중편 소설이었다. 백두산이 폭발해 비행기가 뜰 수 없게 되자 태평양 반대편으로 지구를 반 바퀴 넘게 돌아온 새신랑. 연이은 불운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남자. 미국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터키, 몽골과 중국을 가로질러 북한까지 간 남자는 마지막 15km를 두 발로 달려 남한과 북한의 경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여인에게 도착한다. 결혼식 한 시간 전에. 결혼식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남자는 깨닫는다. 결혼한다고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사랑하는 여자가 미워 보이는 날도 있을 것이고 함께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날도 있을 거라고. 그럼에도 그 남자는 여자와의 결혼식을 위해,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 맞춰 한국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고난과 좌절에도 거리낌 없이, 주저함 없이. 여자가 방글라데시인이고 이슬람교도라고 반대하던 남자의 부모도 하물며 백두산 폭발도 그 무엇도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게 진짜 사랑인 것 같다. 처음 만난 순간처럼 뜨겁진 않더라도 그때 그 마음을 식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것.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문득, 나도 결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이 넘게 내 곁에서 매일같이 있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괴물 이야기, 미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랑 이야기도 내 마음에 꼭 맞게 쓰는 사람, 곽재식. 트위터나 포스타입 계정을 보면 어쩐지 옆집 아저씨, 삼촌 같은 친근함도 느껴지는 작가, 곽재식. 곽재식이 낸 책들을 다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지금처럼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언젠가는 그가 책을 내는 속도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틈틈이 포스타입 글도 읽어야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낭만적인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의 글은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