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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1.06

2026.01.05 (Mon)
주인공이 초딩치고는 음침하고 지적 허영심 많은 성격이라 읽는 내내 재밌었다. “너네 가족은 하나님 믿어?” 라는 말에 “아니. 나는 불가지론자야.” 라고 대답하는 초등학교 5학년… ㅋㅋㅋㅋㅋ 그 마음 알아… 42~43p는 읽자마자 ‘레즈가 되’ 라는 유행어가 생각났다. 여자를 좋아하고 싶다. 그건 호강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진심으로? 남자가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애?”는 진짜 말을 잇지 못함 2030 여성애자 여성의 애환이 느껴진다. 짧은 소설이지만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이 정말 많았어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라는 위픽 시리즈 소개문하고 딱 맞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의 말까지 너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불행을 겪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붙잡으라거나 저런 사람을 피하라거나 하는 종류의 조언도 그런 연유에서 생겨났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아이디어에 넌더리가 난다.” 나도 딱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던 걸 정리한 듯한 문장들을 볼 때마다 좋다.
아이들은 상담 시간에 자주 운다. 차라리 여자랑 사귀고 싶다고 말하면서 운다. 여자를 좋아하고 싶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안다. 그건 호강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고통받을 체력이 회복되고 나면 곧 너 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싶다는 식으로 조건을 붙여 깜찍하게 말을 바꾼다. 그러면 나는 굵은 빗으로 그들의 머리를 윤기가 날 때까지 빗어주면서 겉으로도 속으로도 웃는다. 진심으로? 남자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애?
42~43p
저들 중 누가 그렇게 할까? 누가 너의 머리를 이렇게 오래도록 빗어줄까? 얼굴을 구기지 않고서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법에 대해 그들이 고민할 이유가 뭘까? 괴롭혀주지 않고선 못 배길 매력이 네 배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듯한 시선 속에 있고 싶은 마음을 누가 알아주며, 상상해온 그 시선을 그대로 너에게 쏟으면서도 동시에 너의 결백을 분명히 하고, 도리어 나의 무례를 사과하는 귀찮은 짓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실은 진정으로 네가 그렇게 대해지길 원했다는 사실을 누가 의리 있게 비밀에 부쳐줄까?
43~44p / 읽고 비명을 질렀어요
보이지 않으면 분류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놀라운 자유기도 하다. (…) 그러니까 응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 크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곧 자기 몫의 응시를 갈구하게 되기 전까지는.
17p
나는 멋이 좋지만 멋있다는 말을 듣는 게 싫다. 멋있다는 말은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고, 자기라면 하지 않을 선택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게 내 길일 수도 있을까? 차라리 멋있어지는 게 답일 수도 있을까?
23p
내가 알아본다는 걸 저 애가 알아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단짝이 된다.
31p / 나도 이런 생각 자주 해…
보다 주의 깊게 들으면 우정을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 자신의 사회적 매력에 대한 회의, 의리와 윤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연인과의 계급 격차, 그 격차로 인한 교내 질서 붕괴의 책임 등을 논하기 위해. 아이들은 그걸 꼭 ‘고민 상담‘이라고 부른다.
36p
세상에는 이해받지 못하는 기쁨이란 것도 있는 법이야. 이것은 이해받는 기쁨을 알기 전의 이야기다.
45p
그 애의 눈은 내게 말한다. 너무했어. 너무했어. 하지만 내가 너에게 어떻게 ‘너무‘할 수 있겠어? 원망이란 아래서 위로 치켜뜨는 시선. 내가 어떻게 너의 위에 있을 수 있어? 나는 이곳에서 별로 존재했던 적도 없잖아. 그러나 그 애가 아래에서 위로 나를 쳐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현듯 웃풍이 몰아치는 겨울밤 인견 이불 한 장을 덮은 것처럼 몸이 떨린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시선만으로도 전할 수 있을까? 웃긴 게 아니라 귀여워서 그랬다고…… 아니다.
53p / 너임마너초등학생아니지
그리고 네 위에서…… 아무튼 네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사과하겠다고……
54p
그러나 나는 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배꼽 안으로 더욱 세차게 얼굴을 묻었다. 벌써 더 묻고 싶었기 때문에. 묻기에는 부끄러운 질문이라는 걸 스스로 배우고 나서도 기꺼이 묻고 싶어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령 이대로 중학생이 된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너무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희망이 되기도 하는지. 모두가 이토록 마르고 싶은지. 이렇게나 외로운지. 아는 척이 심한 다른 여자애를 엄마는 알고 있는지. 바깥의 세상에는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지, 많은 다른 것들도 아름다운지, 나도 내 몫의 응시를 가지게 되는지, 그러니까 소녀들은 언제쯤 따로 자라지 않게 되는지, 그런 것들이 그녀가 영원토록 답해주었으면 싶어서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58~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