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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1.14

2026.01.13 (Tue)
이 책을 읽고 내 지난 20대를 돌아보았다. 나의 20대는 분노로 가득했고 정의감과 대의명분, 억울함과 피해의식이 뒤섞인 혼합물이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지 조금 되었다. 과연 내가 20대 내내 느낀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을까? 그 분노가 정말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을까? 그저 나를 갉아먹는 건 아니었을까? 한편으로는 그때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현실과 타협하고 지금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가? 더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일에 종사할 수는 없었나? 이게 내가 바라던 내가 맞나?… 과거를 돌아보든 현재를 직시하든, 내 마음을 지배하는 건 불안과 회의감이었다. 늘 그랬듯이. 글쓴이는 스코틀랜드 아니, 영국 전 지역을 통틀어 가장 가난하다는 글래스고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자신의 불우한 가정사와 끝없는 가난에 자신을 내던졌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다시 먹은 사람이었다. 술과 약물에 의존하던 삶을 뒤로하고 래퍼로서, 활동가로서, 그리고 이제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단단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담담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중간 계급’으로서 ‘노동 계급’인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뒤늦게 너무 시혜적이었다고 자책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나를 용서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중요한 건 지금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난날과 과오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발판 삼아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정체성 정치, 교차성의 개념에 대한 좌파의 선호와 이를 이용만 할 뿐인 일부 사람들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조금 섬찟하기도 했다. 20대 내내 내가 가장 중요했던 개념이 바로 교차되는 정체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글쓴이는 스스로 좌파라고 하면서도 일부 좌파가 이러한 개념을 오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어 잘 읽히지 않았다. 내 10여 년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심호흡을 하고 잠시 책과 떨어진 뒤에,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으니 그의 말도 이해가 갔다. 일단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의 말마따나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증오하는, 퀴어(맨날 농담조로 이젠 거의 뭐 헤테로다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퀴어로 정의한다) 아시안 여성이었다. 그는 영국에 사는 이성애자 남성이었다. 나는 부족함 없이 자라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온 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중간 계급이었고, 그는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풍족했던 적이 부족한 노동 계급이었다. 우리의 공통점이라고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뿐이었다. 그런 그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적한 것은 나와 내 친구들, 비백인 여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 천천히 깨달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를 경청했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도왔다. 자기 생각을 명확히 피력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냈다. 가난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이 아닌, 자신이 전부 옳다고 옳은 일을 위해 행동한다고 당연하게도 믿었던 불과 몇 년 전을. 나는 여전히 용기가 부족하다. 그렇지만 나를 돌아보고 있고, 나의 미숙했던 모습과 실수를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해할 노력도 하지 않고 무작정 비난하던,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여전히 존재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여성 혐오, 외국인 혐오(특히 중국에 대한), 장애인 혐오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이민자 혐오를 하는 청소년들과 대화하고 그들 삶의 궤적으로부터 그 이유를 알아내고 이해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너는 혐오자야, 하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생각을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경멸하고 분노를 느끼겠지만 최소한 한번이라도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 글쓴이가 알려준, 무엇보다도 용감하고 성숙한 태도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이었다. 최근 많은 사람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나도 그러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나의 실수를 남 탓으로 돌리진 않았는지 오히려 이를 지적한 이에게 화내거나 비아냥거리진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진솔하게 사과를 전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이런 용기를 갖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성숙한 사람,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업무 시간 틈틈이 카톡으로 고민을 들어주다 나와 닮은 점이 아주 많은 친구에게 너 정말 어른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을 70% 가까이 읽은 참이어서 부끄럽고 민망했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좋게 봐주기도 하는구나. 그래도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좋은 사람,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쓴이의 말마따나, 체제와 사회를 완벽하게 바꾸는 건 아주 더디게 진행될 것이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 못 볼 것이기에. 가장 바꾸기 쉬운 ‘나’부터 더 나은 것으로 바꾸는 실천을 하다 보면 내 주변부터라도 조금씩 바뀌어 어느 날, 그 어떤 노래 가사처럼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길.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