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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1.15

2026.01.14 (Wed)
제목처럼 주인공 펄롱이 사는 삶은 우리 삶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듯 따뜻한 듯 흘러가는 이야기에서 펄롱이 어떤 상황을 겪은 후 본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찝찝함을 내버려둘듯 하다가 마지막에 그 본인의 감정, 양심을 배반하지 않고 직시하는 편의 선택을 한 것이 좋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엄청나게 울거나 화를 내는 등의 감정 표현이 없었다는 것도. (충분히 감정표현을 넣을 만한 여지가 있을만한 이야기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기에) 왜냐하면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 덕분에, 마지막의 그 선택도 무미건조했던 일상처럼 제자리를 찾아 사소한 일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잊을 때 쯤 계속 자각하는 말인데, 세상에 완벽한 타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점심을 먹을까 말까, 낮에 씻을까 밤에 씻을까 이런 한번 스치고 말정도의 아주아주 작은, 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각각 다른 삶을 이룬다. 그 수많은 선택들 중 단 하나의 선택도 겹치지 않는 사람을 타자라고 칭한다면,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의 삶도 나와 겹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세상에 '남의 일이니까'로 넘겨버릴 수 있는 아픔들을 가능하다면 넘기고 싶지 않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 "살아갈수록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큼 다행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아픈 쪽이 훨씬 좋았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라는 대목이 있다. 이 책이 나를 또 한번 더 '아는 사람'이 되고 싶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