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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1.27 ・ 스포일러 포함

2026.01.26 (Mon)
읽는 내내 사무치게 외로웠고 쓸쓸했다. <나목>의 경아처럼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었고, 마치 내가 '나목'이 된 것처럼 음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전쟁, 그렇지만 내 핏속에 내 전의식에 꾹꾹 새겨진 전쟁.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북에서 서울로 내려왔다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다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구타를 당한 후유증을 끝끝내 앓았다던 우리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두 할머니도... 그들은 어떤 삶을 살다가 갔을까?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는 4명의 그 시절 사람들 얼굴을 찬찬히 더듬으며 나는 그리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릴 적만큼 격정적이진 않고, 단지 미미한 그런 그리움을. 사실 나는 그 유명한 <자전거 도둑>도 어릴 때 읽지 않았다. 책을 싫어했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1층부터 5층까지 뺀질나게 도서관을 드나들었고 새 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국어 책 속의 활자부터 주르르 읽어가던 난데. 그 시절 많은 아이들이 읽었던 <자전거 도둑>을 나는 아직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그 내용도 모른 채 살았다. 그래서 박완서는 내게 아득히도 먼 사람이었다. 좀 더 자라서 <엄마의 말뚝>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읽어보지 않았다. 2011년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렇구나, 대단한 사람이 죽었다구나, 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나온 이 책을 나는, 또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읽었다. 그리고 이제야 그의 죽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참 많이 뒤늦게도. <지렁이 울음소리>라는 제목이 가진 역설에 이끌렸다. 책 제목이 <지렁이 울음소리>인 것도, 이 책의 처음을 장식한 글이 <지렁이 울음소리>라는 단편인 것도 좋았다. 본디 지렁이는 울음소리가 없다. 있다고 해도 우린 듣지 못하는 소리일 것이다. 주파수가 다르다던가, 너무 작은 볼륨이라던가 하는 이유로. 각자 중년과 노년이 된 제자 숙이와 욕쟁이 선생 이태우는 각자의 삶에 지긋지긋한 권태를 느끼던 중 서로를 만난다. 다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그들은 이태우 선생의 편지로 만남의 끝을 맺게 된다. 이태우는 과연 죽었을까? 죽음으로써 지렁이 울음소리라도 토해내려던 그의 시도가 성공했을까? 숙이도 언젠간 지렁이 울음소리를 뱉을 시도를 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숙이는 그냥 주어진 삶을 오래도록 권태롭게 살아가며 이태우 선생을 종종 떠올릴 것이다. 나는 그런 결말에 은근히 위안을 받았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박완서는 진정으로 부끄러워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한다. 정말로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은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겪은 것이 아니라, 천박하고 상스러운, 명예와 권력과 재물이라는 다채로운 색안경을 쓴 마음가짐이라고, 작가는 숨김없이 말한다. 이 글은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1976년에 나왔다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수학과 같은 지식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무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이라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나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내가 부끄러워하는 만큼이라도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아니, 아니면 어쩌면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도 부족한 것일 지도 모른다. 이런 말이 오만한 것이라면, 나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에 가야할 것일 지도.... <도둑맞은 가난>은 워낙 사람들 입방아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로 읽어보니 차라리 상훈에 가까운 처지인 나도 그에게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 감히 가난까지 빼앗아 가려고, 정말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다 빼앗아 가려고 들어. 상훈과 그의 아버지라는 정말 역겨웠다. 나라도, 누구라도 세간살이를 다 던지며 내쫓았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상훈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전의 여유롭던 생활에서 밀려나 갑자기 가난에 내던져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죽어버리고 혼자가 되어 자기만의 가난한 삶을 꾸려나가던 참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어리숙한 상훈을 나름 같은 가난의 세계에서 '거두어' 줬는데 감히 갑자기 지금까지 일은 모두 나에게 체험이었고 유의미한 경험이었다고 말을 해?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체험거리이고 동물원 우리 안의, 철창 안의 빤히 쳐다보게 되는 구경거리라고 하면 분개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종종 사람들은 노숙인이나 쪽방촌의 사람들, 쉼터나 보호소의 이들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성소수자들도 그런 대상이 된다(나는 아직까지도 자기에게 게이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던 대학 동기를 기억한다). 멀찍이 서서, 유리를 가운데에 두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함부로 유추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그 속에 갇히게 되면 견디지 못할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가난뿐만이 아니라 모든 '불행'으로 여겨지는 '다름'을 철창 안에 가두어 두고 구경하는 건 징그러운 인간들의 가장 역겨운 악취미다. <나목>을 읽으며 나는 경아가 되었다. 이름이 외자라 경아, 경아 하다가 결국 경아라고 불리게 된 스물 스물하나 되던 그 여자. 죽고 싶다가 살고 싶다가, 사랑했다가 사랑하지 않았다가, 실컷 웃다가 문득 권태롭고 짜증을 부리게 되던 그 여자. 옥희도 씨와 이어질 수 없음에 울컥 자신을 사랑해준 남자와 결혼한 그 여자. 두 오빠가 포탄에 산산조각난 것을 보고도 어머니가 계집애만 살았다고 푸념하는 걸 듣고도 그 낡은 집에 끝끝내 살던, 그 집을 허물고도 은행나무만은 남겨놓자고 주장하던 그 여자.... 사실 내가 그 여자가 되었다기 보다는 내 지난 스물 스물하나를 그 여자의 스물 스물하나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 여자와 나 사이에는 6·25 전쟁이라는 너무나도 크고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나는 내 동생을 집안에 몰래 숨기지도, 동생의 몸이 피칠갑을 한 채 조각나 있는 것도 보지 않았다. 보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감히 내가 경아가 되었다, 라고 하기에 나의 인생은 너무나 순탄하고 보잘 것 없었다. 다방에서 태수를 마주하고 당차게 옥희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던 어린 경아는 중년이 되어 중년이 된 태수와 함께 죽은 옥희도의 개인전에서 그의 쓸쓸한 나목을 마주하고 나온 뒤 참을 수 없어 나이 든 남편, 태수의 이마 주름에 입술을 묻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서로 사랑하던 경아와 옥희도가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옥희도가 그의 아내와 다섯 아이들을 두고 경아를 선택했다고 해서 둘이 행복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년의 경아도 그걸 알았고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사무치게 남편이, 같이 늙어 온 태수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경아는 태수와의 결혼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아니 어쩌면 구질구질하더라도 옥희도와의 사랑을 이어나가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치의 후회도 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것이다. 다만 참을 수 없는 울컥함을 늘 그렇듯이 견디어 내면서. <카메라와 워커>는 영동 고속도로가 뚫리던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불안정함을 우울하게 조명한 글이었다. 그 시절, 장성한 조카를 걱정하던 고모는 6·25 전쟁을 겪은 세대였고 비뚜름하게 자라난 조카는 여전히 휘청이던 한국 사회의 칼바람을 온 몸으로 맞이하던 세대였다. 훈이가 번듯한, 즉 대기업에 다니고 '공일에는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과 놀러 나가는' 그런 가장이 되지 못한 건 절대 고모의 탓도 할머니의 탓도 아니었다. 일찍이 죽은 그의 부모 탓도 아니었다. 고모가 조카를 키워내는 데 실패했다고 느낀 것도, 조카가 고모의 기대와 어렴풋한 자신의 기대와는 영 다른 삶을 살게 된 것도 모두 그 시절의 대한민국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모든 책임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있던 것은 아니어서,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에 무슨 말도 하지 못했다. 고모가 훈이를 다시 키운다 해도 자신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부처님 근처>를 읽으면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묻힌 만불사를 생각했다. 만불산 올라가는 길에 주르르 놓여 있는 황금색 부처님 보살님을 떠올렸다. 어릴 땐 무섭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던 그들을. 문득 한참 멀리 있는 그곳이 그리워져 빨리 운전 연습을 해서 나 혼자라도 차를 타고 다녀와야겠다는 충동적인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곳에 다녀오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어깨에 기대 죽은 것보다도 고요히 잠든 어머니처럼 나도 편한 잠을 잘 수 있게 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나는 사상 때문에 죽은 아버지와 오빠도 없고 그들의 장례를 20년 넘게 지내지 않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그만큼의 숙원은 없고, 따라서 전쟁도 사상에 따른 죽음도 겪어보지 못한 나의 모든 얕은 불운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사상이 ‘빨갱이’ 같다고 해서 총에 맞거나 고문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세상을 보면 꼭 그렇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어쨌든 나의 고만고만한 불행을 해소할 방법은 부처님께 빌고 제를 지내는 것으로 해소되진 않을 것 같다. 책을 야금야금 읽어가며 나는 내 슬픔도 우울도 책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느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묘한 여운을 느껴 한참이나 이 글을 붙들고 있었다. 문득 경아의 어머니가 끼던 틀니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정말로 버렸을까? 경아가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쓸쓸함을 느꼈을 그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 전쟁을 겪고 가족과 일상을 잃은 뒤 영원히 그 전과 같이 살진 못했을 사람들에게 짙은 연민과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내 주변에 그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음에, 이야기를 아픔을 나눌 사람이 없기에 나 역시도 음울하게 침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