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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2.08 ・ 스포일러 포함

2026.02.07 (Sat)
이희주 <최애의 아이>를 감명깊게 읽고 급하게 사놓은 것 치고는 꽤나 늦게 읽은 책. 오로지 <최애의 아이>만을 보고 구매했음에도 나는 7편의 이야기들을 욕심껏 그득그득 집어삼켰다. 소화제도 없이, 그냥 영원히 뱃속에 묻어두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이야기들. 멀고도 가까운 나라 베트남에 물결치는 몸을 두고 내 혼은 대한민국으로 자꾸만 둥둥 떠갔다. <반의반의 반>은 오천만 원이라는, 제법 큰 액수의 돈이 사라진 것을 주된 사건으로 삼는다. 영실의 오천만 원은 윤미의 합의금이 되었다가 현진의 교환학생 자금이 되었다가 끝끝내는 영실의 실버타운 입주비도 되지 못한 채 미궁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좌절하는 것은 윤미와 현진뿐이며 영실은 요양 보호사 수경에 대한 애정으로 이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3대에 걸친 여자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며 나는 영실의 편도 되었다가 윤미의 편도 되었다가 현진의 편도 되었다가 했다. 그런데 자꾸만 영실에게 마음이 갔다.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따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유독 노년층에게 마음이 약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랬다. 엄마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한 윤미도 가여웠으나…. DEAN의 <반>을 따라부르며 읽은 이야기는 미적지근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쉽기도 했으나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라고 생각도 했다. <바우어의 정원>에 나오는 은화도 머리가 하얗게 눈이 내린 여성이다. 3년이라는 공백을 깨고자 오디션에 지원한 그는 오디션 합격보다도 더욱 값진, 정림이라는 후배와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그 말을 들으니…”로 시작하는, 두 여자가 차를 타고 가며 나누는 대화는 추운 겨울이라는 작품의 배경마저도 잊을 정도로 따뜻하고 든든했다. 7편의 이야기 중 가장 희망적으로 끝나는 작품이라 그런지 다 읽고 나서도 꽤나 여운이 남았다. 정림의 이야기를 훔칠 것을 제안한 연출가에게 어렵지 않게 거절 의사를 밝힐 은화를 상상하며 나는 ‘강보라’라는 작가에게도, 은화와 정림에게도 애정을 느꼈다.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를 읽으면서는 사랑하는 친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처음 이야기를 듣던 때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는 나에게 여전히 소중하고도 귀한 보물이다. 연락이 뜸해져도 언제나 애틋한 내 친구를 떠올리며 나는 얼마나 많은, 다른 친구들과 멀어졌는가. 트랜스젠더 이슈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가 이상한가 싶다가도 어린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사랑해온 그를 떠올리면 그러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애써 합리화를 하게 된다. 너의 인생에도 오스틴이, 혜령이 있었겠지.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일까?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주인공은 얼핏 보면 나와 닮은 점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서 그때 내 마음도 저랬을까? 하고 떠올려 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물론 내가 일부러 떠올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지나쳐온 많은 아이돌, 배우들을 떠올리며 그중 절반 조금 안 되게는 이제 어디 가서 함부로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람임을 상기했다. 남자들은 왜 그럴까? 유독, ‘남자’ 연예인들은 왜 그럴까? 싶다가도 그만 제풀에 지쳐 생각하기를 멈춘다. 한땐 정말 좋아했고 응원했고 사랑했던 이가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일 먼저 느끼게 된 감정은 슬픔이었고 그다음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이었다. 분노는 항상 나중에 왔다. 쉽게 분노를 느낄 만큼의 사랑은 아니었으니까. 함부로 화내지도 못할 만큼 좋아했으니까. 그러나 결국에 나는 알량한 정의감으로 길티 플레져조차 느끼면 안 된다 생각하고 오로지 길티만을 느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괴롭거나 힘들거나 할 정도로 좋아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은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예전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상태만을 바랐었는데. 꼭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에너지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관성이, 스스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더욱 손쉽게 쓰이는 도파민이라는 게 정말로 나에겐 중요한 걸지도…. <원경>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신오를 비웃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돼지 뼈로 가득한 구덩이 속에 있는 자신을 알아채고 허망함을 느끼는 신오는 안쓰러웠다. 원경과 그의 이모, 보살님은 모두 구덩이 바깥에 있는데 자기 혼자만 구덩이 깊은 곳에서 저 위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절망감, 소외감. 신오는 전 애인 원경을 찾아 속죄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려고 했으나… 원경의 이름으로부터 ‘먼 곳’이라는 의미의 동음어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누구보다 가까웠다고 생각한 원경이 아주 먼 곳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신오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진실에서 느끼는,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감정. 처음에는 신오가 일전에 읽은 다른 한국 단편 소설에서 읽은 지훈 같은 남자인 줄 알았다. 가까운 (줄 알았던) 여성에게 마음대로 기대를 해 놓고 그가 자기 기대와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너무 쉽게 분노하는 남자. 그러나 신오는 지훈과 달리 그로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오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고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에서 그의 안녕을 바랄 수 있게 되었다. 이희주는 정말 매력적인 작가이다. 작가 소개에서 <성소년>이라는 책의 제목을 발견하자마자 웃음이 픽픽 났다. 예전에 <성소년>을 읽고 난 뒤에 나는 차마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라 버벅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희주의 소설은 그런 마력이 있다. 읽는 내내 웃었다가 심각했다가 경악하다가 하지만 막상 다 읽고 난 후 내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빽빽하다 못해 펑 터져 종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2022년에 <성소년>을 읽고 글을 쓸 때는 이게 졸린 상태에서 책을 덮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최애의 아이>를 읽으면서는 그게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누가 내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을 헤집어볼까 두려웠던 거다. 한 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 욕망해본 적 없는 내가 우미에 나를 대입하고 유리에 누군가를 대입할까 말까 망설인 머릿속을, 언젠가 꿈에서 최애와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는지 둘째 계획을 진지하게 세우던 걸(첫째도 아니고 둘째인 게 진짜 웃기다) 내심 기억하는 머릿속을. 만약 우미와 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최애의 정자로부터 ‘최애의 아이’라는 한정 커스텀 굿즈를 소유하고자 할 것인가? 죽었다 깨어나도 아닐 것이다. 늙어가는 최애의 모습까지도 사랑할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는 나에게 최애가 늙은 뒤에도 싱싱한 미소년일 최애와 나의 아이와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다만 한 번씩 생각은 하겠지. ‘최애의 아이’를 낳는 팬들을 보며 무슨 기분일까 상상하고 궁금해는 하겠지. 그러나 그뿐일 거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토마토로 만든 우미를 이해할 수 있다. 유리의 아이가 아니면 필요 없으니까. 우미에게 그건 앨범을 깠는데 유리가 아닌 다른 멤버의 포토 카드가 나온 것이나 다름 없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 같아도 그랬을 게 뻔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포토 카드가 나와서 쓰레기통에 처박듯이, 아이도. 여자를 씨받이나 임신 기계로 보는 남자들처럼, 우미도 나도 우리 모두 아이를 굿즈로 보면 가능한 일이다. 현호정의 소설은 얼마 전에 읽었던 고전 SF 소설 <솔라리스>를 떠올리게 했다. 부랑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나는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를 지구의 탄생 혹은 붕괴를 상상했다. 만나라든가 아름다움이라든가, 성경에는 완전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지구과학 이야기로만 와닿았으나 작가 노트와 해설을 보고 나서야 이게 창세기 얘기구나! 할 수 있었다. 작가 노트는 열심히 읽어도 해설은 매번 셀프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어 조금 등한시했는데, 약간 마음이 바뀌었다. 신형철 평론가가 ‘한 번 읽으면 현란하고 두 번 읽으면 심오하고 세 번 읽으면 쓸쓸하다.’라고 했는데 꼭 세 번을 읽고 싶어졌다. 단편집이 이렇게 전부 인상적인 글로만 채워지기는 쉽지 않음을 안다. ‘수상’ 작품집이라 그런가 싶어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오면 또 관심을 가질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