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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3 (Mon)

내가 더 많은, 오래된 SF 소설을 더 많이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 글쓴이가 언급하는 책의 대부분을 처음 접해서 그의 통찰에 감탄하기보다는 그 책들에 대한 소개 정도로 읽혔다. 그럼에도 즐겁게 읽은 부분도 꽤나 많았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든 키워드 두 가지는 '페미니즘 유토피아'와 '모던 고딕'이었다. 여성 작가들의 SF, 특히나 그 중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상상한 작품들에 대한 당대 유명 작품들은 다채롭다기 보다는 뚜렷한 경향성을 띄었는데, 남성 작가들의 SF 소설과 비교했을 때 유달리 두드러졌다. 여성들의 페미니즘적 유토피아에서는 남성에 대한 착취가 당연하지 않았다. 남성들의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가 그랬던 것과는 달리. 어떨 때는 아예 남성이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반면 남성 작가의 우울한 세계에서 여성들은 살해당하고 강간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건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서도 그렇고,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그렇다. 또한 남성들 머릿속의 세계에서는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남성들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또는 디스토피아)를 본 적 있는가? 나는 없다. 이로써 정말로 여성 없이 살지 못하는 것은 남성들임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여성이 자기들 없이는 못 살길 너무나도 바란다! 남성이 없으면 못질은 누가 하고, 정수기 물은 누가 갈고, 건설은 누가 할 건데? 당연히 여성들이 다 할 거다. 전쟁은 어쩌고? 전쟁은 없을 것이다. 왜냐? 지금까지 전쟁을 일으킨 이들의 모든 이들의 성별을 잘 생각해보길. 남자들이란! 너무나도 여성을 원한 나머지 여성도 남성을 꼭 필요로 하길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 대한 조롱은 이쯤에서 그만 두고, 나는 이제 모던 고딕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글쓴이는 모던 고딕에 대해 반-페미니즘적이라는 뉘앙스로 말하지만 나는 읽으면서 그 모던 고딕이라는 장르가 꽤나 궁금해졌다. 으이구 뻔해 소설(특히 로맨스 계열)을 꽤나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장을 읽고 나서는 모던 고딕 목록을 만드는 건 없던 일로 했다. 이 책의 모던 고딕에 대한 장이 여기에 수록된 모든 모던 고딕 책을 합한 것보다도 더 재미있을 것이 분명해서. 이 부분을 읽는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는데, 특히나 그 장르에서 필수적인 그 모든 반증에도 불구하고 슈퍼메일이 실재한다(심지어 글쓴이는 '정말로 존재한다'를 굵은 글씨로 쓰기까지 했다)는 가정을 읽으면서는 진짜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지금까지도 나만의 슈퍼메일이 어딘가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21세기 여주인공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도 아니었다고는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너무 웃겼다. 그런 여자들은 솔직히 좀 귀엽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들고. 하지만 슈퍼메일을 비롯한 이 장르의 특징이 당시 여성 독자들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만들어진 장치임을 생각하면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기왕이면 이런 류의 책이,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의 SF를 다룬 책이 최신 버전으로 또 나왔으면 한다. 특히 요즘 한국 사회에서 여성 작가가 쓴 SF를 읽는 여성 독자가 늘어난 만큼,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SF를 다룬 책이 나오면 참 좋겠다. 왜 한국 여성들이 SF를 쓰기 시작했는지, 그 작품들에 경향성이 있다면 무엇인지. 한국 여성들이 그런 SF를 읽게 된 이유는 무엇이고 왜 열광하는지. 조금 더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입장에서 분석한 그런 책. 논문으로 찾으면 어딘가 있을 것도 같다. 오랜만에 논문 아이 쇼핑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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