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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3.26

2026.03.25 (Wed)
내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 무하의 그림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으로 프라하의 무하 미술관을 방문한 23살의 초여름, 나는 영원히 그의 그림을 동경하고 사랑할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나는 무하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메데>와 <에메랄드>에 특히나 마음을 빼앗겼고 각 그림이 그려진 책갈피와 마그넷을 사오게 된다. 마그넷은 엄마에게 선물했고, 책갈피는 혹여나 책 사이에 집어넣었다가 구겨질까 아까워 실제 사용도 하지 못하고 가끔씩 서랍에서 꺼내 들여다보는 보물이 되었다. 나에게 그는 신비로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눈빛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는 무하와 동시대에 살았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도 저들이 그려진 비스킷 통, 와인 병, 포스터와 담배를 갖고 싶었다. 이유 없이 좋아했던 체코라는 나라가, 알폰스 무하 덕분에 더욱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모랑 기차를 타고 예희와 프라하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체코를 향한 나의 사랑은 깊어져만 갔다. 무하도, 체코도, 예희도 너무나 소중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 잊었다. 복학을 해야 했고 다시 학교에 적응해야 했으며 대학생 너머의 미래를 위해 뭐든 해야 했다. 프라하와 체스키 크롬로프에서의 기억은 점점 옅어져만 갔다. 친구에 대한 마음도. 코로나 시대에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영국이니 독스체니 하는 것들은 대학생 때 잠시 누렸던 무언가가 되었다. 내가 학교에 속해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모든 돈을 지원받아도 부끄러움이 없었을 때 누릴 수 있던 꿈만 같은 무언가. 또 다른 소속이 생기고,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었을 때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체코, 프라하, 무하, 예희를 기억 저편에서 꺼내올 힘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낡고 먼지 쌓인 보석함을 후후 불고 털어낼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프라하를 동경했는지, 무하와 무하의 그림을 사랑했는지… 얼떨떨할 정도로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연락처를 뒤졌다. 예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무하에 대한 책을 읽으며 너를 생각했다고. 그날을 떠올렸다고. 그때 우리 미술관에서 내가 무하의 커다란 포스터를 살까 말까 고민했던 것, 네가 눈치 없던 나 대신 우리 이모를 이끌고 한식집에 가준 것, 다 내 마음 한켠에 있었다고. 무하의 작품과 같이. 너무 보고싶다고, 우리 언젠가는 다시 프라하에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