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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4.01

2026.03.31 (Tue)
사실 엄청 와닿는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떤 글들을 나를 소외시켰고 나 역시도 다른 어떤 글로부터 동떨어져 나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근현대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물론 역사에 관해서도 많이 아는 바가 없지만...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정말로 정말로 아는 것이 없어 읽으면서 어렴풋이 대한민국의 독재 정권들과 유구한 여성혐오를 대입해 읽으며 나와 책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했다. 12개의 단편 중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와 <검은 물속>이었다.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는 길에서 주운 두개골을 사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였다. 마지막엔 먹는 것을 줄여 해골과 닮아가길 선택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는 안타깝기보다는 부러웠다. 저런 애정을 느낄 대상이 있다니.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닮아가고 싶은 마음을 마지막으로 느낀 게 언제였더라. 물론 거식증에 대한 내용임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다만,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외모지상주의와 끝없는 자기검열을 뿌리칠 힘도 없는 나로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먹지 않기'를 택하는 그 여자가 다른 의미로도 많이 부러웠다. <검은 물속>은 읽고 너무 좋아서 소장용으로 구매까지 한 책 <바깥세계>의 수록작 <바깥세계>와 닮았다. 바깥세계에서 보면 역겹고 잔인하고 기이한 것을 숭배하는 사람들. 오염된 검은 물과 그 속에서 나온 시체, 기형아와 주민들이 뒤섞여 노래를 부르는 어느 먼 나라 사람들에 고통과 피와 살육을 숭배하던 한국인들이 겹쳐보였다. 남의 피가 묻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도망치는 주인공을 보며 나라면 저 상황에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더러운 아이>, <거미줄>, <학기말>,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색>은 그래도 흥미롭게 읽었으나 나머지 글들은 읽으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도 많이 했다. <아델라의 집>도 나쁘지 않게 읽었던 것 같긴 한데, <이웃집 마당>은 읽는 내내 찜찜했고 결말도 기대 이하였다. <거미줄>처럼 <이웃집 마당>의 아내도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하지만, 결과적으로 <거미줄>에서는 그 후안무치 남편이 '어떻게' 되었던 것에 비해 <이웃집 마당>에서는 신경과민과 같은 아내가 이웃집 그 아이와 마주치며 '어떻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웃집 마당>에서도 아내의 우울증을 가벼이 여기는 남편이 고양이 대신 배가 찢기고 내장이 튀어나오길 바랐을 지도. 이 책의 제목이자 마지막 글인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역시 기대하며 읽었으나... 멋진 소재에 비해 결말이 아쉬웠다. 자국의 남성들로부터 폭력과 살해를 당하는 여성들을 보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이라는 주제는 다분히 여성주의적이다. 주인공 실비나가 자신의 어머니나 마리아 엘레나, 또는 지하철의 여인처럼 열정적인 활동가가 아닌 것도 굉장히 의미있었다. 실제로 우리 여성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니까. 다만 나는 실비나의 미온적인(이라기보단 열정적이지 않은) 태도 그 속이 궁금했다. 실비나가 어떤 마음으로 행동에 참여했는지, 마리아 엘레나와 자신의 어머니가 '너는 언제 몸에 불을 붙일거니?'하고 물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는데. 낯설지만 궁금한 나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작년에는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으니 올해는 라틴 아메리카의 오랜 역사부터 최근의 일까지 다 톺아볼 수 있는 한 해를 보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