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
<12인의 성난 사람들> 속 배심원 12명은 각기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다.
야구 경기에 늦을까 봐, 고향을 욕해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이유 없이 혐오하거나, 자신을 떠난 아들이 생각나 피고에게 감정을 투사하는 등 그들의 분노는 다층적이고 이기적이다.
이 영화는 유일하게 무죄를 주장한 8번 배심원, 데이비스가 나머지 11명을 설득해 가는 과정을 담은 법정극이다. 어떤 관객은 이를 무고한 생명을 구한 민주주의의 위대함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찝찝함을 느꼈다.
왜 감독은 (초반을 제외하고) 단 한 컷도 피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왜 법정을 떠나는 순간까지만 보여줬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9세의 어린 피고는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현장에서 발견된 특이한 칼은 사실 빈민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누군가는 칼잡이는 칼을 그렇게 찌르지 않는다고도 한다. 거짓 증언을 한 노인, 사건 발생 당시 안경을 벗었을지도 모를 여성 증인까지. 보는 관점에 따라 이 모든 요소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진실에 도달했음을 확신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들이 오직 제도와 절차를 통해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과정을 보여준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