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yoons's
점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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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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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
~1.7
2
~2.2
2
~2.7
2
~3.2
12
~3.7
10
~4.2
6
~4.7
13
≤4.8
4.8~5
4.3~4.7
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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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의 이야기>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 177p '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목표를 조준하는 것과 같아. 너는 언제나 내 예상보다 앞서 나가 있을 거야.‘ - 188p '사고란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말하는 과정‘ - 203p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이런 의문들이 내 머리에 떠오를 때, 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물어,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 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내 허리를 두른 그의 팔을 떼어내고,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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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 전세계적으로 평단과 리스너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랩의 황제 켄드릭 라마의 앨범이다. 기습 발매한 앨범이어서 아침부터 굉장히 놀랐다. 이지 리스닝 앨범이며 켄드릭의 전작들과 같은 깊이감은 없을지언정 뱅어 트랙들이 굉장히 많다. 다시말해 켄드릭의 앨범 중에서는 제일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앨범이다. SZA의 아름다운 보컬과 래칫 사운드들의 킬링 트랙들이 굉장히 좋았던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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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 100주년 기념 재개봉, 극장에서는 첫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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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소통과 화합 그리고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처음보고 SF 장르에 어떻게 이런 상상을 더했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세부적인 궁금증과 여운이 오래 남았다. 첫 관람은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 봤지만 두 차례의 극장 스크린에서 본 이 작품은 느낌이 확 달랐다. 영상미에 압도당하며 음악에 또 한번 압도 당한다. 주인공 언어학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다. 언어는 모든 소통과 화합의 시작이며 또한 갈등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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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친 영화’ 라는 마케팅이 진짜일 줄은 몰랐다. 미쳐봤자 얼마나 미쳤다고. 하지만 진짜 미친 영화였다. 이 영화는 바디 호러물이면서 동시에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 장르가 섞여있는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바디 호러물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일단 이 영화 굉장히 강렬하다. 연기부터 시작해서 연출, 음악 그리고 미장센, 특히 색감이 너무나도 강렬하다. 어떤 것은 너무 강렬해 관객 입장에서 불쾌감까지 느낄 정도이다. 잦은 클로즈업이 그 예시다. 하지만 이런 불쾌감은 당연 의도된 불쾌감인 것이기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감독의 의도를 잘 파악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배우 데미 무어의 연기는 굉장했다. 평소에도 알고 있던 배우였지만 연기를 본 적은 없기에 흥미롭게 봤다. 자기 혐오에 빠진 배우의 연기를 강렬하고 사실적이며 공포스럽게 연기했다. 배우 마가렛 퀄리의 연기도 좋았다.이 작품은 현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상황을 무참히 깐다. 중년 백인 남성들의 권력과 소모되어 버리는 여배우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에 나오는 영화 제작자의 이름이 하비인 것만 봐도 할리우드 성추문 스캔들의 하비 와인스타인이 바로 떠올릴 정도로 노골적으로 깐다. 거기에 더해 자기 혐오에 빠지는 즉,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며, 늙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풍자한다. 이 작품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인정할 만큼 굉장히 몰입도가 높은 각본이었으며 관객을 몰아침과 동시에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나 후반 시퀀스는 정말 듣도보도 못한 전개였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이다. 이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이 나오지만 사실 하나다. 계속 강조하는것이 ‘둘은 하나다’ 라는 것이다. 결국은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이라기 보다 또 하나의 새로운 나의 ‘복제’ 또는 사람에게 쓰지는 않지만 ‘변태’라는 개념에 가깝다. 우리는 생명체의 탄생을 볼때 인간의 밑 즉, 자연분만 또는 앞 즉, 제왕절개를 통해 그것을 본다. 때론 가슴에서 에이리언이 나오는 것조차 생명체의 ‘탄생’이다.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것은 탄생시킨 자와 탄생한 자는 서로 다른 존재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래서 앞이나 밑으로 생명체가 나오지 않는다. 마치 애벌레가 변태를 거쳐 성충이 되는 듯이 뒤로 나온다. 아마 감독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엘리자베스’ 와 ‘수’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야자수가 나오면서 밤낮이 바뀌는 장면들은 아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고 곧게 서있는 것은 어쩌면 늙고 싶지않은 인간의 욕망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요즘 이런 작품이 나오질 않는데 이렇게 완성도 높게 나와줘서 참으로 기뻤다. 정식 개봉하면 한 번 더 볼 것이고, 이왕 이동진 평론가님이 gv를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해주셨으면 좋겠다.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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