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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5

수평선
웹툰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네 손을 잡고 가고싶다. . . . 나와 그들은 왜 살아있지, 떠올리기 싫은 무서운 생각이 든 적 있나요? 왜 사람은 고통의 땅을 디디며 살아갈까요. 무엇 때문에 죽이고 상처주는 걸까요. 우리가 세상에 머물다 가는 동안 무슨 의미가 생겨날까요. 모든 피와 땀과 노력과 헌신은 헛된걸까요? 우리네 삶은 헛된 걸까요? 소년과 소녀는 왜 걸어가나요? 소년은 왜 소녀를 지키나요? 소녀는 왜 이상한 남자를 버리지 않았으며, 소년은 왜 이상한 남자를 죽이나요? 소녀는 왜 죽어야했나요? 소년은 왜 청년을 구해주나요? 소년은 왜 사나요? 소년은 결국 웃었나요? . . . 사랑이라는 행위는 개손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극단적이고 매정한 이야기지만 차마 엉터리라고 치부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다가 죽게되는 운명을 타고났다. 누군가를 자신의 세상에 들인다는 건 그 사람의 죽음도 안고 가겠다는 약속이다. 결과적으로 사랑은 이별의 고통까지 함의하는게 아닌가......? 사랑은 정신적으로 개손해가 맞다. 그런데 죽음을 고통으로 여겨주는 누군가가 있는 한, 그 죽음에는 의미가 생긴다. 덧없이 태어나 덧없이 죽어가는 이 벌레같은 생명에 가치가 생긴다. 인간은 참 우스운게, 혼자서는 별 볼일 없으나 여럿이 모이면 그 안에서 관계가 생겨난다. 그 관계가 서로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 덧없는 삶에 의미를 새긴다. 덧없는 것 끼리 살고자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사랑을 부정하기는 싫은 이유가 그것이다. 인간으로서 그렇다. 나와 내 혈연, 친구. 또 미래에 있을 내 연인...? '너'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삶과 죽음에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싶어서다. 웹툰을 읽으면서 내 감정이 가장 격하게 반응했던 장면은 다름아닌 그것이다.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장면. 칙칙한 흑백 만화가 색으로 물들어, 노란 꽃밭에 소년 소녀가 미래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금치 못했다. 내가 느낀 감정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나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아닐 것이다. 그저 인간 삶에 대한 아름다움을 한껏 긍정하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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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르라미 울 적에
게임
나의 고3 입시미술 생활의 동반자이자 나의 롤모델 ...... 고백하자면, 난 이 게임을 직접 한 게 아니다. 인터넷 방송인이 하는 영상을 봤을 뿐이다. 하지만 쓰르라미 울 적에는 비주얼노벨이고, 사실상 플레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송인의 주관이 나에게도 주입될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지만, 난 최소한 이 작품의 본질을 느꼈고, 직시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고3때 쓰르라미를 봤다. 내가 보던 유튜버가 뭔가 고전 명작스러운 걸 하길래 보았다. 그저 가벼운 마음이었다. 한 편 한 편이 길었으므로, 핸드폰에 저장해서 두고두고 보았다. 입시반 시기, 그 때는 학교보다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매 시간을 쓰르라미를 봤다. 왜냐면 분량이 보통 분량이 아니니까...... 학원 차를 기다리면서, 학원 차 안에서, 그림 과제를 하면서, 점심을 먹으면서, 점심을 먹고 학원 뒤 공원을 걸으면서, 집에 돌아와 방에 누워서, 등등...... 그냥 그 때의 쓰르라미는 나의 동반자였다. 정말 할 말이 무궁무진하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만 서술해보겠다. 일본 특유의 동인 감성을 아는가? 오타쿠 감성. 이를테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 세계』 라던가, 『어라? 어째서...... 나, 눈물이?』 라던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던가......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대사들이다. 평행우주, 루프물과 같은 설정들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다소 기이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쿠 계열에서는 그런 극단적인 설정에서 극적인 사랑과, 우정과, 슬픔과, 감동을 우러내고 연출하고자 한다. 나는 그러한 점이 좋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원조 맛집인 쓰르라미 울 적에께서 나에게 직접 전수해주었다. 위에 나오는 오타쿠 대사들은 사실 전부 쓰르라미 울 적에에서 등장하는 대사들이다. 쓰르라미는 오타쿠들이 추구하는 그 정수들을 아주 맛있게 버무려냈다. 모두가 죽지 않는 세계를 거머쥐기 위해 10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여름을 반복하는 소녀, 이전 우주의 끔찍한 자신의 과오를 기억해내고 비로소 속죄하는 소년, 친구이기 때문에 반드시 믿고 손을 뻗어야 한다는 동료제일주의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동인 감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감성을 매우 치밀하고 견고하게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쓰르라미에게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 만일 내가 장편 만화를 연재하게 된다면, 쓰르라미같은 만화를 그릴 것이다. #비주얼노벨 #일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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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영화 / TV
내 인생 1년에 세 번 본 영화 없었다. ...... 드럼을 잘 치고픈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마구 채찍질하는 교수님. 주인공의 열정은 차츰 교수님을 향한 분노로 변모하고, 음악은 이미 예술이 아닌 자존심과 승부의 영역으로 변모한다. 그 끝내 마지막 무대에서 주인공은 작중 최대의 일탈을 저지르고 마치 복수에 성공한 듯한 쾌감을 선사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모두 드럼 소리로 치환된다. 결말이 과연 해피 엔딩일까? 라는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드럼을 향한 순수한 사랑은 없어지고, 경쟁과 증오만이 남은 배드 엔딩인가?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내가 괴물이 된 주인공에게 강하게 열광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았던 그 때의 나 역시, 입시 미술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예술을 경쟁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주의다. 그러나 현실은 예술처럼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좋다며 갱지에 낙서나 해대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입시미술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본작 주인공처럼 분노의 화신이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미 입시라는 전쟁터에 놓인 상황에 처했다. 그림으로 이겨서 대학에 붙는다는 걸 초목표로 전제한 삶 속에 살았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나는 주인공의 폭주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입시 미술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21세기는 경쟁이 활발한 시대이니까. 그러니까 참 아이러니한거다. 교수의 광기와 동화되어 괴물이 되어버린 주인공, 그 둘이 처음으로 교감의 눈빛을 교환하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느낀다. 타오르는 열정! 오! 드디어 음악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었구나! 라는 듯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게 정녕 바람직할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예술은 무엇인가? 관객은 관객 자신을 마주하며 의문을 갖게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대단하다. JK시몬스 배우의 연기가 아주 일품이었다. 많은 표현이 떠오르는데, 이 배우가 연기한 플래처라는 인물은 참 '지독하다'. 지독한 연기를 참으로 잘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어쩜 이리 지독할까? 재즈를 좋아했기 때문에 들어간 가산점도 분명히 있다. 영화 전반에 삽입된 빅밴드 재즈의 음악은 내게 영화 OST 그 이상의 예술로 다가왔다. 드럼 소리를 특히나 좋아하기에 더욱. #음악영화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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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