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플레저: 호랑이 만지기.
이 소설의 시작을 여는 작품인 만큼 끝까지 책을 놓치 않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내가 힙합 음악을 좋아하며 꽤나 고심 했던 부분이 아티스트와 창작물의 경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이는 소비자의 몫이 라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이 작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비자가 판단할지 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한 재생을 하던 노래나 영화에 더 이상 손이 가지 않게 된 듯 아티스트의 논란과 사고들도 어쩌면 창작물을 더욱 특별 하게 만들어 주는 장치 이거나 혹은 그저 핑계일 지도 모른다.
•스무드
성해나 작가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정말로 외국인의 시점에서 쓴 듯 한국을 묘사하고 가족애,고양 감 그리고 향수와 같은 주제들을 묵직하게 던짐과 동시에 유머 적인 요소들도 놓치지 않는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며, 개인적으로 이 책의 타이틀이았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모노
오컬트 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주요 내용은 신을 되찾으려는 한 무당의 고군분투인데, 그 과정에서 무당도 인간이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소름이 돋는다. ’바나나 맛이 나지만 바나나가가 아닌 우유’ 라는 대목이 이 단편, 어쩌면 이 소설 전체를 꿰뚫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겹치는 부분이 많게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나치즘 모두 내가 충분한 지식을 갖고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직업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특히 유사점이 보였다. 윤리적으로 어긋난 업무에서 효율을 낸다면 그것은 매정한 인간일까 유능한 인간일까? 하는 질문을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문득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우호적 감정
회사에 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두려움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것이 사회 생활일까? 손익과 감정이 차갑게 얽혀있는 듯 하다. 성인 이라는 이름 뒤에는 책임, 의무,이해 등의 단어가 따라오곤 하는데 과연 어디까지가 어른스러운 행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잉태기
부모 라는 이름은 어디까지 그 효력을 발휘하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다는 근원적인 요구를 부정할순 없지만, 그 욕구가 부모를 집착의 길로 이끈다면? 개인적인 원한의 화살이 엉뚱하게도 자식으로 향했다면? 내가 볼땐 시부의 이야기도 들어 봐야 한다.
•메탈
아아 젊음이여. 아아 청춘이여. 절대 덧없지 않은 것이, 절대 가볍지 않은 것이 어느 순간 한없이 무의미해 보이고, 한없이 부끄러워진다면. 청춘에 불씨는 사라지고 어느새 차가워진 숫돌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불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혹은 숫돌을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아아 청춘이여.
전반적으로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리즈처럼 영상화 하면 좋을 듯한 작품이다. 눈에 들어오는건 글의 형태지만, 머리가 인식하는건 영상의 형태에 가까운 생동감 있는 묘사가 언젠간 스크린에서도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