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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5.14

2026.05.05 (Tue) ~ 10 (Sun)
작가의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는 에세이이다. 좋은 부분도 크게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결국 전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된 거 같았다. 이 책은 예술을, 추억을, 슬픔을, 세상을, 의지를, 죽음을, 살아감을 이야기 하는구나. 솔직하게. 그리고 그게 좋았다. 여러 문장들도 좋았지만 나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장 끌로드 아저씨’나 ‘연극을 끝까지 보기 위하여’도 좋았지만 ‘김동현 선생님께’ 부분은 정말 좋아서 전부 형광펜을 긋고 싶은 마음이었다. 진심이 담긴 글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관객의 마음속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우리는 동시대인이므로. 우리는 알고 있으므로. 우리가 목도한 것들은 그 목도의 충격만으로 우리 몸의 역사가 되었으므로.
51
그리고 어쩌면 극장에서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주체성은 관객의 주체성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순간 무언가를 바라보고, 이미 본 것과 지금 본 것을 연결하며, 그렇게 펼쳐가는 의식의 지형도로 생을 꾸리고, 자신을 구축한다.
54~55
나를 황홀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상반된 반응의 공존이었다. 좋건, 싫건, 자신의 감상을 부끄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장 빌라르가 사랑한, 관객들이었다.
60
김동현 선생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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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우리는 그날 기어이, 어떻게든 만나고 말았을까요. 그랬다면 물어보셨겠지요.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그즈음은 어떤 주제에 마음이 기우는지, 어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어떤 추함을 불편해하는지,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는지, 그래서 더 깊고 쓸쓸해졌는지.
65
그래서 선생님을 그날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창경궁 뜰 안 어느 돌 틈을 밟고, 실은 조금 안도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듣고 싶어 하실 만한 이야기를 제 안에서 한 톨도 길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저는 잘못했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듣고 싶어 하실 만한 이야기를 감히 속단했습니다. 저를 향한 경청의 깊이를 오해했습니다. 감히 외로운 척을 했습니다. 그것이 미안합니다.
65
그러니 마침내 이 편지를 쓴다고 해서 제가 우리의 이별을 한 장 과거 속에 가둬버리는 것은 아님을 부디 알아주세요. 그러나 역시 조금, 쓰면서 조금 울었고 애석하게도 눈물에는 정화의 기능이 있지요. 선생님의 연극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67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67
공연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회화와 같은 공간예술이 한번 완성되고 나면 공간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시간에 깃들어 발생했다가 그 흐름과 더불어 종결된다. 작품의 존재는 그것이 발생하고 있는 오직 그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관객은 사라짐의 목격자가 되어 영영 혼자만 알아볼 흐릿한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더 이상 존재가 없으므로 점차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중 어떤 기억은 되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몸에 기입된다. 그렇다 해도 흔적이 남는 것과 존재가 남는 것은 아득히도 다른 일이다. 시간예술의 근본에는 슬픔이 있다.
83~84
이토록 좋은 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기 위해 몸을 움직임으로써 행복의 구체를 깨지 않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을 잊었다. 이토록 좋은 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이내 고개 저었던 내 안의 순전함만을 기억할 뿐.
84
우리는 다만 노래를 멈추지 않으면서,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그것이 어떤 노래일 수 있을지를 끝없이 성찰해야 한다. 계속 노래하라는 말이 누구에 대한 폭력도 아니게 될 때까지. 시간이 흐르면 공연이 그러하듯 언젠가 우리 모두 사라질 테니.
92~93
법이란 위선적인 인간들의 저열한 거짓됨을 만족시키기 위한 폭력의 도구다. 그리고 그 폭력으로 인해 지워졌던 것들이 때로 돌아와, 폭발적 난입으로써 저 위선을 고발한다.
100
그러나 세계는 예컨대 테러 이후에도 가면을 벗지 않으며, 도리어 정의로운 가면을 계속 쓰기 위한 도구로 그것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100
살아가는 동안 연마한 선함은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었더라도 내 얼굴을 온화한 늙음 쪽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간직한 채 서로에게 지키는 예의가 세계를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103~104
그렇게 가부장제의 명예 남성이 되어 제 목을 조르고 있었음을 깨닫는 일은 그 자체로 또 한 번 트라우마가 된다. 깨닫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말들이 너무도 뼈아프기 때문이다. 한때 사랑이라 믿었던 많은 것들을 부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지했기에 방관했고 무감했기에 동조했던 순간들 속에 나 자신이 또한 가해자였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19~120
그러므로 오직 유가족만이 끝내 할 수 있다고, 아마도 용기를 주기 위해 그들은 말했다. 유가족만이, 희생자만이, 피해자만이 할 수 있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끌어안고 운다.
120
언젠가 네가 충분히 울게 되면, 그때 다시 나를 만나러 와.
123~124
그리고 충분히 우는 것은 우리가 직접 어떤 사건을 당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겪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감. 애초에 인간은 그것이 가능하기에 연극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123~124
훗날 델보가 회고하기를, 아우슈비츠에서는, 날마다 목도하는 누군가의 죽음이 사실은 나의 죽음일 수 있었으리라는 공포가, 그 슬픔이 온몸을 지배했노라 했다. 저것이 나일 수도 있었지만 저 사람이 죽음으로써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일. 그런 의미에서 모든 죽음은 나를 대신한 죽음이었노라는 감각. 수용소 바깥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프랑수아즈는 말했지만. 이곳, 우리의 현실 속에서, 모든 여자는 서로를 대신해 유린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 울고 있는 저 존재는 나의 얼굴이다. 이토록 뼈아픈 이입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연극보다 더 연극적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유가족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다. 이 연극을 끝까지 올리는 일을. 이 연극을 끝까지 보는 일을.
124
하루는 나 혼자 꼭대기 층에 있고, 아저씨 일행이 그 아래층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쉬는 시간 다급히 달려온 그가 내게 2층으로 내려가라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미리 봐둔 빈자리를 먼저 가 맡아놓고 나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여기가 공석이 맞느냐고, 그럼 여자아이 하나가 와 앉을 텐데 자리를 맡아줄 수 있냐고, 옆 사람에게 부탁하고 달려온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다. 할 수 있는 한 더 좋은 시선을 내게 주려고, 시선을 주려고 한 일이기 때문이다.
136
그가 준 시선으로 나는 무대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을 보았다. 특별히 하늘을 본 적도 많았는데, 쉬는 시간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극장의 은밀한 곳으로 가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게 해준 덕이었다. 운이 좋으면 해 지는 하늘을 만날 수도 있고, 멀리 에펠탑에 불빛이 반짝거리는 순간을 목도할 수도 있었다.
137
그렇듯 내가 즐거이 훔쳐본 것은 주로 무대 밖의 가려진 단편들이었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허구의 세계보다는 그 세계의 가상성을 뜻하지 않게 폭로하는 작은 것들의 침입이 나는 좋았다.
138
나는 곧 다시 만나자 했으나 아저씨는 손을 내저으며 돌아섰다. 인천으로 다녀오는 왕복 티켓을 파리에서 끊었으므로 1년 안에 올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살다 보면 그게 쉽지 않다고, 나를 영영 못 볼 것으로 그는 여겼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가지 못했다. 그런 것이 삶인 것을 그는 이미 아는 사람이었을까. 그래서 그토록 오페라로 그도 도피했던 것인지.
149~150
숨죽인 대상화의 폭력이 눈에 보이는 날. 기이한 기울기가 기이해지는 날. 그러면 세상은 조금 더 끔찍해지지만 나는 세계의 진실에 그만큼 다가갈 수 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은 나의 무지 바깥에서 늘 존재해왔으므로. 살아갈수록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큼 다행인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아픈 쪽이 훨씬 좋았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162
어떤 발화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말들이 물들인 세계로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간다.
178
모든 것을 알아도 문장을 말하는 이유는 그 말의 발설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아도 생을 사는 이유는 살아야지만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80~181
그 모든 것이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행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두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181
내가 반복해온 행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 발생할 또 다른 행위가 나를 바꿀 것이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새로운 주체가 되고, 어쩌면 세상을 조금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181~182

운닝
05.18
아욱겨 인용구 진짜많아ㅠㅠㅠ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