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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공개 ・ 03.19

2026.03.18 (Wed)
너 우울증일 수도 있어, 병원에 가 봐. 언니들의 말을 듣고 엄마에게 더듬거리며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 지 벌써 10년이다. 우울증 진단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대학이 내 공간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고 휴학했고 낯선 나라에서 2달 동안 거의 누워만 있었다. 종종 자살할 것을 생각했고 사랑하는 이들이 죽음을 선택할 때마다 슬프면서도 부러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상처도 받았다. 반면 내가 준 사랑과 상처도 많았다. 그 모든 일을 겪는 동안 내가 먹는 약은 늘었다가 줄었다가 했다. 나는 이제 우울증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안다. 내가 내 우울을 명명하고 받아들인 것과는 다른 일이다. 나는 이제 나을 수도 있음을 언젠가는 매일 아침 약을 먹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글쓴이도 인터뷰이들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삼십대 여성이고 모두 극심한 우울을 겪는다(겪었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했다. 우울한 여성의 머릿수만큼 그 원인이 있었다. 읽을수록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마침 그때 글쓴이가 우울한 여자들은 자신의 우울을 검열하고 또 검열한다, 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내가 꾀병을 부리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 것 아닌가, 하며 자신의 우울을 과소평가하고 의지만으로는 절대 이겨낼 수 없는 것을 이겨내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운 친구가 자살했을 때 느낀 감정도 비슷했다.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슬픔, 그가 세상을 등지며 느꼈을 감정을 감히 상상하며 흘리는 눈물, 그리고 마음 한 켠에 내가 실행하지 못한 죽음을 실행한 용기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나는 오늘도 핸드폰 배경화면에서 웃고 있는 설리를 하루종일 봤고 짧아진 머리를 감으며 다신 긴 머리 안 해야지, 하다가도 내 사진을 보고 마음을 누른 뒤 ‘긴 곱슬머리를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좋다’고 글을 쓰던 은수 님을 떠올렸다. 그래도 은수 님은 주변 친구들과 같이 장례식도 가고 가끔 서로 다독이기도 하며 많이 무뎌졌는데, 책에서 설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며칠 전 할아버지가 보고싶어서 회사에서 몰래 운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울면 안 된다고, 좋은 것만 기억하고 웃어야 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 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당신을 좋아하며 행복했던 일만 떠올려도 모자를 판에 나는 왜 언제나 먹먹한 마음으로 눈물만 흘리는가. 이러면 가서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그랬는데, 미안해. 생전에 한 번 제대로 보러 가지 못한 게 미안하고 또 더 사랑하지 못한 게 미안했는데 자꾸만 자꾸만 미안한 일이 늘어간다. 울어서 미안해, 슬퍼해서 미안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 나을 것도 같던 우울인데 이런 날이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의심하게 된다. 약을 줄이고 줄이면 언젠가 안 먹는 날이, 정말 올까? 나는 이제 약을 먹는 게 힘들지 않고 자연스러운데. 그냥 예전에 생각한 것처럼 영원히 우울증과 약과 함께 해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이 우울이 어쩌면 낫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내 성격의 일부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제는 약을 먹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이 예전에 비해서는 그래도 많이 호전된 상태여서 그럴 수도…. 나는 이제 매일 밤 숨죽여 울면서 잠들지도 않고, 내가 죽는 모습과 죽는 방법을 상상하는 횟수가 유의미하게 줄었다. 여전히 슬프지만 전보다는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다. 나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믿는다. 지금처럼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리며 울지 않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린 정말 많은 것이 달랐지만 또 그만큼 많은 공통점을 공유했다. 우리는 단순히 여자의 몸이어서 우울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우울도 단지 지금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우울한 여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고, 외롭지 않게, 울지 않게 해주고 있다. 이제는 예전과 같은 마음을 지니지 못한 내가 그래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것인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지나온 길을 지금 막 걷고 있거나 또는 어느 다른 날 그 길을 지나온 사람들이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언젠가 내 말을, 내 글을 접한 어느 누군가에게 조금의 위안과 동질감을 주는 것. 서른이 되면 죽겠다던 그 서른을 맞이한 나는 이제 어쩌면 정말로 꽃집 할머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피실피실 웃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졌다.

kcloldl
03.19
우왕 저도 읽고 싶어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