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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롱이
안뇽 나야 뽀롱이
최신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책
짤막짤막한 한 장 한 장을 무덤덤하게 읽었지만 내심 치미는 울컥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코레드였고 내 동생은 아율라였다. 비록 내 동생은 남자들을 죽이진 않았으나 나는 언제나 동생을 질투했고 증오했고 또 지나치게 사랑했다. 내가 질투와 시샘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 꼭 나를 위한 시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장점을 금방 찾아낼 수 있는 천리안이 있다. 그래서 언제나 친구들이나 연예인들의 특별한 점을 빠르게 파악해 금방 사랑에 빠졌고 그와 동시에 그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남들에 비하면 내가 가진 것, 내 장점은 장점도 아닌 것 같았다. 언제나 타인을 선망하고 동경하는 사람에게 제일 가까운 대상은 가족일 수밖에 없었다. 예쁘고 매력적인 내 동생은 나랑 같은 성별을 가졌고 나와 2살 차이가 났다. 나는 날이 갈수록 그 애의 좋은 점을 시샘하고 청소년기를 기점으로 그 애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 애의 뼈밖에 없는 몸과 당당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나도 가졌으면 하고 바랐고, 충만한 자신감과 몸을 갈아서라도 해내는 책임감을, 예쁜 표정과 감각적인 사진 기술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동생의 모든 것을 질투하고 시샘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반면 그 애를 너무너무 사랑하기도 했다. 우리 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했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 한평생 같이 살아온 이를 만나는 것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동생이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가면서 우리는 더 자주 연락을 했고, 동생이 대학원을 졸업할 즘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메신저로 킬킬거렸다. 종종 서울에서 저녁을 먹고 숨이 넘어가게 웃다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아닌 척 금방 헤어지기도 하게 되었다. 만약 내 동생이 자신이 만난 남자들을 죽이고 나에게 연락을 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쫓아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저 애를 고발하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었을까? 죽어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 같아도 코레드처럼 나의 아율라가 죽인 시체를 몇 번이고 처리하고 그 애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내 동생은 내 직장에 관심이 없고 나 역시 내 직장에 관심이 가는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심심할 때마다 우리 화제에 오르는 “자매의 진흙탕 싸움”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일은 아니니까. 언니 코레드는 언제나 동생 아율라를 지키고 보살피는 쪽이다. 동생을 편애하는 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린 지는 오래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까지 낚아챈 동생이 아무리 밉고 증오스러워도 동생이 그 남자를 죽이려다 되려 자신의 칼에 찔렸다면 언니가 파멸시켜야 할 것은 동생이 아니라 그 남자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동생을 지키던 언니는 언제까지나 동생이 안전하고 즐거운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 동생을 질투하지 않을 수는 없어도 그런 동생을 지킬 줄 아는 코레드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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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 2
책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책 <미들마치>. 결혼해서,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괜히 생각나는 ‘결혼이 덫 같아’라는 가사를 가진 그 노래를 내내 곱씹으며 책을 읽었다. 도러시아와 캐소본, 로저먼드와 리드게이트는 배우자의 단면만 보고서 결혼했기에 그들의 결혼은 불행했다. 나이 많은 캐소본은 심장마비로 떠나면서까지 도러시아를 옥죄었다. 도러시아는 그의 유산으로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던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자신과 래디슬로의 행복을 선택하는 데까지는 짧지 않은 기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래디슬로라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 자신이 누리던 것을 다 내던지고 뛰어드는 두 번째 인생은 분명 찬란했겠지! 리드게이트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에 비해 로저먼드는 왜 이렇게까지 동정심이나 이런 감정이 안 드는지 모르겠다. 글 중간중간 로저먼드나 불스트로드 등 일부 인물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가 뚜렷하게 나타났음에도 나는 왠지 로저먼드에게만은 마음이 가질 않았다. 예쁘고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그 여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내 안에 내재된 여성혐오일까? 프롤레타리아 정신일까? ‘마님’이라 불리는 도러시아에 대해서는 연민과 애정을 갖지만 리드게이트 ‘부인’인 로저먼드에 대해서는 얄궂은 마음뿐이니 후자는 아니겠다 싶다…. 2권을 읽으면서 케일럽 가스만큼이나 좋아진 인물은 캠던 페어브라더 목사였다. 페어브라더 역시 메리에게 호감이 있었으나 그는 메리와 프레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프레드에게 진실되게 말하는 장면에서 나도 프레드만큼이나 감동을 받았다. 페어브라더의 고백은 프레드가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했고, 그래서 메리와 프레드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했다. 피날레에서 그의 뒷이야기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페어브라더도 잘 살았을 거라 믿는다. 결혼이… 뭘까? 몇 년 전부터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우리도 7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으려니 종종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 같아서 회피 아닌 회피 중….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이 책을 교훈 삼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를 좀 믿고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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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 1
책
조용하지만은 않은 작은 미들마치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수없이 교차하는 많은 인물들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각 사건과 등장인물에 대한 감각이 강렬하진 못했다. 다만 도러시아를 보며 예전의(또는 지금까지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창피하고 안타깝다가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뿐이다. 20살을 전후로 한 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때 내리는 결정은 완벽하지 못하다. 도러시아의 결혼처럼, 그리고 우리가 진학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것처럼. 그 외에 인상 깊은 인물은 케일럽 가스였는데, 그가 미들마치의 여러 세속적인 사람들과 대비되게 보여주는 점잖음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케일럽 가스에게 메리 가스라는 딸이 태어나고 자란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책의 뒷표지에서 어느 정도 확인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 중에 가장 궁금한 것은 메리와 프레드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호감을 지녔지만 너무 다른 두 사람이 과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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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영화 / TV
박찬욱의 ‘정상 가족’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봉준호가 <기생충>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정상 가족.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가부장제 속에서 흔히 상상하고 볼 수 있는 가족을 그린다. 가장의 노력으로 마련한 그린 듯한 자가와 서로 사랑하는 남성-아버지와 여성-어머니, 그리고 그들 밑에서 유순하게 자라는 두 아이들. 아이 중 하나가 예체능을 하는 것까지 너무나도 완벽하다. 그러나 이처럼 가부장 신화 속에서 견고하게 세워진 가족의 탑은 가장 유만수(이병헌)가 실직함과 동시에 조금씩 무너지게 된다. 약속한 3개월이 지나도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가장으로서 이병헌의 선택은 꽤나 참신하다. 경쟁자를 죽이는 것. 무너져가는 탑의 내부가 곪기 시작한 것도 여기서부터다. 이병헌은 이상민을 살인하려다 염혜란의 불륜을 목격한 뒤 아내 손예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오징어인지 오진호인지 하는 의사도 연하남이란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은 엄마가 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절도죄를 저질렀고, 딸은 첼로에 재능이 출중한 나머지 음대 교수에게 몇백을 내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수록 이병헌은 가장으로서 살인을 완벽하게 해내야 했고, 그렇게 했다. 어쩔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정말 어쩔 수가 없던 것은 손예진이었다. 사실 이병헌이 혼자 (나름)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짊어지려고 버둥거리는 동안 현실적으로 가족의 위기를 극복해낸 건 손예진이었다. 좋아하던 테니스를 관두고 치위생사로 취업한 것은 물론, 아름다운 집까지 팔아치울 작정을 한 것도 손예진이었다. 아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아들 친구 아빠에게 여지를 남긴 것도, 뒷마당에서 나온 시체를 모른 척 한 것도 손예진이었다. 아들에게까지 그건 돼지였다고 말하는 모습이란! 이병헌이 무너지는 탑의 모래를 주워 담으면 손예진은 곪은 데에 약을 발랐다. 사랑스럽게 웃는 얼굴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 구도는 이상민-염혜란 부부의 가정에서도 유지된다. 실업자 남편이 술만 퍼먹고 유의미한 성과는 가져오지 않는 동안 실질적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내였다. 집이 장인 것이라는 이상민의 말이나, 자기 아버지가 카페 차려준다는 것을 마다하고 왜 고생을 하느냐는 염혜란의 말은 실제로 가정 경제를 지탱하는 건 가장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남성-가장이 이끌어가는 정상 가족의 허상이 낱낱이 드러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으로서 남성이 가질 수 있는 권위는 그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은 가장을 대신해서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가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자명한 사실이. 아니라고 딴지 걸고 싶다고? 수많은 근현대 한국 문학에서 몸 팔고 공장에 나가 가족을 부양하는 어머니, 누나, 여동생이 등장하는 것도 다 허구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그런 많고 많은, 우리 사회를 반영한 작품의 연장선일 뿐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너무나 자명하게 가부장제와 젠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병헌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지금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 별명이 이병헌인 것과는 별개이다(미주는 이민정이다). 그러나 또래 중년 남배우 중 그 정도 위상에 있는 사람 치고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것은 이제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웅앵웅 초키포키” 말하는 수많은 탑급 남배우들 사이에서 이병헌은 솔직히 대사 전달력부터가 다르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병헌만한 탑급 중년 남배우가 없다. 이건 진짜 어쩔수가없다…. 반면 이상민은 정말 좋아한다. 사실 선배라는 호칭 대신 상민 씨라고 불리는 것을 그러려니 했을 때부터 그냥 인간적으로 그 사람이 좋았는데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 덕분에 정말로 더 좋아졌다. 염혜란도 좋아하는 배우이고 손예진도 그렇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즐거웠다. 좋아하는 배우들의 좋아하는 연기를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아, 이게 영화였지, 하는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첼로의 선율은 이 영화가 박찬욱이 만든 것임을 분명히 한다. 약간 서슬 퍼런 영화의 색감도, 배우들의 소박한 대사도. 박찬욱 영화는 잠깐 새벽에 꾸고 일어나게 되는 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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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책
너를 꼭 안아주고 싶어, 꼭.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귀신처럼 톈홍과 그의 자매들, 징쯔총과 샤오촨, 밍르 서점의 두 주인과 아산의 곁을 떠돌아다니며 그들을 한 번씩 껴안고자 했다. 나는 온기도 마음도 전할 수 없는 책 바깥의 귀신이지만 그래도 닿을 수만 있다면. 타이완, 내게는 귀신들의 땅이 아닌 낭만의 땅. 많은 이에게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아름다운 그곳. 타이완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그렇게 부른다지만 외지인에게는 너무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 나는 이제야 타이베이가 아닌 용징에서, 외부인이 아닌 타이완 사람의 시선에서 타이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 근방 나라 중 제일 낫지만, 타이완에서도 소수자를 짓누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시절에 대한 것이었다. 동성애자를 죽이고 여자들을 업신여기던 타이완의 어느 시절에 대한, 그런 책. 그래서 천 씨네 사연많은 다섯 자매와 그들의 엄마 아찬은 핍박을 받았고, 아빠 아산과 주인공 톈홍, 밍르 서점의 두 주인과 징쯔총은 삶의 끝까지 내몰렸다. 손가락질만 당해도 아린 인간의 몸과 마음에 실제로 생채기가 남았다. 오로지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읽으면서 내가 아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를 떠올렸다. T처럼 마지못해 혐오 세력에 가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많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T처럼 사랑받지도 못하며 하물며 살해되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그런 영예가 주어지지 않기에 더욱 당당하게 소수자의 존재가 두려움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가부장적인 전통이라고 불리는 불평등에 맞서는 여자들이 두렵고 성별이분법적 고정관념이 뿌리내린 사회에 도전하는 성소수자들이 너무나도 두렵다. 언젠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해버릴 것만 같아서? 아니, 이미 그들의 자리라는 건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소수자들, 어린이와 노인, 여자와 젠더퀴어, 성소수자와 이민자와 장애인 정신병자 그리고 수많은 변두리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걸 눈 감고 모르는 척 하려는 사람들의 자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들, 능력도 없고 인간도 덜 된 채 오래된 자리만 지키고 싶어하는 남자들, 이성애자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앞으로도 당연할 것이라고 다름을 포용하지 않는 이성애자들, 청년들, 자신들은 어린 적도 없고 늙을 리도 없다고 여기는 청년들, 비장애인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무식한 비장애인들, 종교인들, 잘못된 믿음으로 혐오를 정당화하는 종교인들 이 혐오자들, 모든 혐오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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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호의 악몽 2
책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으면서 다 읽은 책은 진짜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인가? 오늘까지 반납이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탐험대가 테러 호를 떠나 킹윌리엄 섬에서 행군하다가 흩어진 부분부터는 진짜 정신을 못 차리고 읽었다. 크로지어가 벙어리 여자를 만난 이후부터는 실제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여자가 툰바크와 치룬 것과 같은 의식을 치룬 뒤 탈리릭투그는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어릴 적 메모 모이라 할머니와의 기억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흰 옷을 입은 사제가 아닌 하얀 털로 뒤덮인 툰바크에게 자신을 바치는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떠내려온 테러 호에 깃든 악한 이누아를 알고 미련 없이 배에 불을 지른 장면도 좋았다. 크루지어로 살아온 삶은 가슴에 넣어두고, 탈리릭투그로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된 것 같아서. 2권 후반부에 나오는 세드나는 이누이트 족에서 가장 유명한 신이다. 이전에 읽은 책에서 천문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별에 세드나의 이름을 붙였기에 나도 대강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른 세드나의 손가락에서 고래와 바다표범, 바다코끼리가 탄생했다. 그리고 세드나는 바다의 영혼이 되었다. 새로이 알게 된, 그리고 이 책 전반과 관련이 있는 이누이트 설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세드나가 만든 툰바크는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 ‘진짜 사람들’ 이누이트의 주술사들은 최고의 남녀 주술사들로부터 ‘시샴 이에우아’를 탄생시켜 툰바크와 소통하게 했다. 이리버스와 테러 호의 선원들이 벙어리 여자라고 부른 실나는 시샴 이에우아였다. 괴물 툰바크와 소통했고, 크로지어가 천리안을 가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언젠가 같은 시샴 이에우아가 될 것을 알았다. 크로지어가 탈리릭투그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은 운명이었다. 그 운명을 알고 있던 것은 실나뿐이었지만. 실나가 말 대신 생각으로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크로지어는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던 것이다. 크로지어도 실제 인물이었다. 실제로 두 배가 실종된 지 거의 10년 뒤 이누이트 마을에서 그가 목격되었다고 했다. 이 책은 존 프랭클린보다 그에게 초점을 맞추어 쓰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정말 크로지어가 탈리릭투그든 다른 무엇이 되었든 이누이트 마을에서 고통 없이 지내다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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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호의 악몽 1
책
아니 수요일까지 반납이라 약간 마음이 급하긴 했는데… 읽을수록 더 재미있어서 어빙이 에스키모 여자와 괴물을 목격한 이후로는 진짜 정신도 못 차리고 후루룩 읽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12시 넘은 지금까지 그냥 완독해버렸다. 한참 전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놓은 책인데 이제야 읽다니. 물론 평교에 없었어서 그랬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크로지어는 모르겠지만, 존 프랭클린은 실존 인물이었던 것 같다. 책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기묘하게 섞어 놓았다. 크로지어가 천리안으로 본 것 중에는 실제 미국에서 심령 현상의 목격자로 유명했던 폭스 자매도 있었다. 마지막에 해리 페글러와 그의 스승이자 전 애인인 브리젠스는 추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올 것에 대한 소문을 언급한다. 글쓴이는 존 프랭클린이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 이후, 그의 아내 제인이 돌아오지 않는 이리버스 호와 테러 호를 찾을 것을 촉구하는 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크리스마스와 새해쯤, 크로지어를 분노하게 하고 또 괴물에게 큰 만찬을 제공한 카니발은 두 배가 북극으로 떠나기 전 발표된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모티프로 삼았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인지는 잘 모른다. 북극 탐험의 역사에 대한 나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글쓴이가 정말 교묘하게(p) 글을 잘 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포의 단편이나 <종의 기원> 이야기는 저작의 이름이 나오기도 전에 알아챌 수 있어서 즐거웠다.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재밌게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2권도 1권 정도로 두꺼운 것 같던데, 금방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괴물과 에스키모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리버스와 테러 호, 크로지어 함장과 다른 승조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내일 출근만 아니었어도 2권을 시작하고 잘 텐데! 자야 해서 다음 권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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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무용 / 발레
고전 발레가 아닌 현대 발레! 사실 큰 기대 안 했는데 대표님이 가져다준 팜플렛 보니까 최초의 전자악기도 있다고 해서 그때부터 좀 궁금해지긴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인어공주 이야기는 그대로이고 거기에 안데르센을 암시하는 역할로 나오는 시인이 추가된대서 또 궁금하기도 했다. 확실히 정통 발레는 아니었다. 뭐 이전에 본 발레가 딱 두 편뿐이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발레에 갖고 있던 이미지랑은 전혀 달랐다. 음악도 달랐다. 대표님은 난해하고 어렵다고 약간 투덜거렸는데 나는 오히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사모님도 나한테 공감해주셔서 좋았음 우헤헤. 근데 웃긴거 대표님도 인터미션 때 나랑 사모님의 긍정적인 평을 듣더니 2막은 좀 열린 마음으로 보신듯 ㅋㅋㅎ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시인과 인어공주가 빙글빙글 돌면서 막이 내려가고 이야기가 끝이 났다. 나는 이것이 시인과 인어공주가 서로 공감하거 마음을 나누는 것 이상이라고 느꼈다. 시인은 에드바드와, 인어공주는 왕자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시인이 인어공주를 탄생시킨 순간부터 인어공주는 시인의 분신이었던 반면 그가 시인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왕자를 온전히 잃고나서였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존재가 있다는 걸 알고 서로 부둥켜안음으로써 치유되는 두 개의 사랑. 하얀 옷을 입고 동글동글하게 도는 모습은 물거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좋았다. 인어공주 혼자 물거품이 된 게 아니어서, 같이 물거품이 된 존재가 있어서,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다만 나는 조금은 울고싶었던 것도 같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죽이는 게 어렵나? 나는 사랑하면 집착하게 되고 그게 내것이 아닌 걸 견딜 수가 없다. 나라면 기쁜 마음으로 왕자를 죽였을 거다. 어쨌든 왕자를 죽이고 그 마지막을 쟁취하는 건 나니까. 왕자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왕자를 죽이면 왕자는 영원히 내게 귀속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해서 죽이지 못한다, 사랑해서 놓아준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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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구모권선희문(하)
책
후다닥 다 읽었다! 해설까지 대충 읽고 나니까 책이 갖는 함의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상)권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불교적 색채 7에 도교적 뉘앙스 3이라고 생각했는데, (하)권에서 새영이 나복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비구니가 된 것을 보고 책에 담긴 유교적 함의를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효(孝)는 불교적 가치임과 동시에 유교에서도 상당히 가치가 있는 덕목이었다. 내일 희망도서 신청한 거 빌리러 가야 해서 조금 급하게 읽긴 했는데 그래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열심히 지옥의 모습을 떠올렸다. 유씨가 각 보전을 지나갈 때 묘사되는 다양한 유형의 지옥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흥미로웠다고 하면 그곳에 있던 유씨와 아귀들에게는 좀 미안하기는 한데…. 그리고 좋았던 장면은 활불(세존)이 준 보광등으로 나복(목련)이 지옥을 환하게 비추는 장면! 괜히 내 마음에서도 무언가가 환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20년도 더 전에 본 영화 <오세암>에서 본, 후광이 빛나는 관세음보살이 주인공 남자 어린이를 거두어가는 장면도 생각이 났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수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불교에 더욱 애정이 생긴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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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구모권선희문(상)
책
엄마가 지옥불에 떨어졌다는데 나 같아도 구하러감. 불교적 색채가 강한 중국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극 대본! 쪽수는 많았지만 글자 자체는 많지 않아서 후루룩 다 읽었다. 부나복(목련)의 아버지 부상은 선행을 실천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스스로도 부처님을 귀하게 모셨다. 스님과 도사, 비구니들에게 기꺼이 지낼 곳과 먹을 것을 주고 재식(채식)을 통해 살생을 하지 않아 죽은 뒤 신선이 되었다. 반면 그의 부인 유씨는 남편이 유언으로 남긴 말들(부처를 잘 모실 것, 재식을 할 것)을 지키지 않아 죽은 뒤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상)권에서는 이런 부상의 죽음과 그 이후 유씨의 행동들, 그리고 나복의 효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읽으면서 약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오늘은 풀떼기에 과일을 먹었다고 해도 나나 우리 가족도 모두 고기와 술을 즐기는 사람들인데…. 이 책에서는 나복이 덕이 많고 효심이 깊어 서천으로 어머니를 구하러 가는 데 성공하겠지만 나는 덕은 별로 안 쌓았는데 어떡하지 엄마랑 아빠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러면 우리 넷이 지옥에서 집 짓고 잘 살아야지 뭐…. 그런데 나복이 아버지가 돌아가심에 슬퍼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심에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나까지 슬퍼졌다. 엄마랑 아빠랑 나 죽을 때까지 안 죽으면 안 되나? 내가 먼저 죽는 불효 막시무스 한 짓을 하면 안 되나? 진짜 매번 이런 생각만 해서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기는 한데 사랑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시길…. 불교에 언제나 호감이 있었기에 책이 제시하는 세계관과 엄청 충돌하진 않았다. 오히려 예상보다 몰입을 잘해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처음엔 물론 조금 더뎠으나 읽으면서 점점 몰입하고 그러면서 속도가 붙었다. 얼른 (하)권도 읽어야지. 요즘 또 다른 건 다 재미없고 책 읽는 것만이 제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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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장
책
이 책은 샤오훙의 원작 <생사의 장>을 극 대본으로 바꾸었고, 또 한국에서 공연될 때 한번 더 각색된 작품이다. 원작인 <생사의 장>은 근대 중국 산촌에 사는 이들, 특히 여성들의 힘겨운 삶에 대해 다루었다고 했다. 극 대본 <생사장>은 산촌이라는 배경이 한국인에게 익숙한 농촌으로 바뀜과 동시에 산촌 여성들뿐만 아니라 농촌 마을 사람들의 고된 삶을 다루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긴, 읽는 내내 억척네나 곰보네, 금지보다는 조삼과 반푼이, 성업의 서사가 중심이라고 느꼈다. 정말 아쉬웠다. 다만 일본군이 마을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나 조삼이 딸 금지의 아기를 죽이는 장면과 같은 것은 삭제되어 다행이었다. 안온무해ㅋㅋ한 것만을 추구할 순 없겠으나, 나는 심약하니까. 여자니까 이해해주길! 곰보네가 일본군에게 밥을 주고도 겁탈에 이어 살해까지 당한 것도 너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좋았다. 아무래도 그런 장면은 굳이. 다만 나는 금지가 아기를 잃고 대처로 가서 어떤 삶을 살다가 돌아왔는지 궁금했고, 억척네와 곰보네, 능지네와 다섯째네를 비롯한 마을 여자들이 어떤 삶을 공유했는지가 궁금했다. 극에서 출산과 관련한 장면이 자주 등장해서 좀 의아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이 극이 전체적으로 생과 죽음, 그 사이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라 해서 납득할 수 있었다. 이런 보편적인 정서와 동시에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는 근대사, 평민들에 대한 지주 계급의 횡포와 일본에 의한 억압이 극 <생사장>이 한국에서도 공연될 수 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비록 2005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나는 중국이 싫지 않다. 오히려 점점 가깝게 느껴진다. 이 책을 출판해낸 이들이 말했듯이 한국에서도 중국 극이, 중국에서도 한국 극이 상연되어 서로의 문화에 공감하고 또 서로 이해하며 문화의 융합과 발전을 이뤄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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