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ksksk's
점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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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책. 2024년에 처음 영화로 봤는데, 말도 안되게 내 생각과 비슷한 주인공이라 여운이 그 어떤 영화보다 오래 갔다. 그래서 책이 있는지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이게 무슨 일? 장강명 작가님이 쓰신 책! 팬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생각이나 말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장면들과 대사들을 볼 수 있어서 가장 좋았고, 텍스트로 음미해서 읽는 게 시각적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더 깊이 체감했다. 난 주인공 계나처럼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더 행복해지기위해 떠날 예정이다. 돌아오면 뭔가가 바뀌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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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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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가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해 준 영화 아내 엘리를 일찍이 떠나보낸 할아버지 프레드릭슨은 요양원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요양원에 가는 것보다 엘리가 평생을 꿈꾸던 ‘파라다이스 폭포’를 보러 모험을 떠나게 된다. 바로 집에 풍선 수천개를 달아서 집 자체를 이동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중간에 시끄러운 꼬마 러셀, 형형색색의 괴상한 새 한 마리와 말하는 개까지 합류한다. 이 요란스럽기만 한 두 동물들을 귀찮아하던 와중 그들이 곤경에 처하자, 칼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전부 내버려두고 자신의 소망을 위해 파라다이스 폭포로 향했지만 무언가 가장 중요한 것을 놓고 온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빈 집에서 엘리의 모험 일지를 보던 칼은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비행선을 타고 전 세계를 누리는 것만이 모험이 아니라는 것을, 칼이 눈물 지으며 엘리와 찍은 사진들을 넘겨 보는데, 마지막 장에 엘리가 '모험을 하게 해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새로운 모험을 즐겨봐!' 하고 글을 남겨뒀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칼은, 집을 띄워 날아가 러셀과 케빈을 구하기 위해 집 안의 짐을 모두 밖에 던진다. 그 다음 러셀과 케빈을 위기에서 구해낸 후,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 비행선을 판 돈으로 말 하는 강아지 더그와 집을 구해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자신이 이끌어 나가며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구름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집이, 부부가 그리던 모습 그대로 파라다이스 폭포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보이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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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본 영화. 심지어 처음으로 간 영화관에서. 그동안 먹는 데에만 많은 소비를 했다. 그러다보니 한 달이 지났는데, 남은 게 서점에서 산 27년 일력 하나 뿐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아, 뭔가를 많이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영화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유일한 영어오디오가 제공되는 영화가 <Heart of beast>였다. 그리고 거리를 걸으며, 유튜브를 보며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봐왔기에 한 번은 보고 싶었다. 재미없어도 그것 또한 경험이고, 재미있으면 그건 꽤나 큰 수확일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예매했다. 시간에 임박해서 영화관으로 들어갔는데, 꽤나 여유로웠다. 한국보다 상영 전 광고를 많이 틀어주는 것 같았다. 영화 자체는 너무 좋았다. 이 말조차 아쉬울만큼. 전장에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제임스(브래드피트)와 오딘(강아지)가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보는 매 순간 '왜 저 사람에게는 저런 시련과 역경이 끊이질 않지?'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이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로 못 버텼을 것이다. 절대. 프랑스 파리에 와서 알게 된 나 자신은 겁쟁이고, 끈기도 없고, 도전을 싫어하고, 예측 가능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중에 가장 충격이었던 건, 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쉽게 무언가를 포기하고, 합리화하는 게 어느새 여기에선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이 상황에서 영화를 보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목표를 위해 어디 하나 다치더라도 끈질기게 쫓아간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다. 이불킥을 할 정도로 실패한 경험도 없고, 쪽팔림을 감수한 적도 없었다. 참, 편하게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쪽팔림을 감수하며 무언가를 해볼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름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콘텐츠를 만드는데, 이것마저도 이불킥을 할 정도로는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뭘 위해, 어떤 목표를 위해 제임스처럼 혹은 오딘처럼 가야하는 걸까? 이 답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동안에 찾아가야할 것 같다. 그리고 파리를 떠나기 전 영화관에서 한 번 만 더 이 영화를 보고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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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처음 봤는데, 원서가 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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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난 2024년. 처음으로 내가 아닌 타인의 고통에 동기화되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공동체의 힘에,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가장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통곡 소리에 귀를 기울인 한 해였다. 아마 개인적으로도 고통을 받은 힘겨운 한해였기에 더욱이 공감을 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책을 읽기 전 그저 구경이라는 명목으로 소비되는 타인의 고통은 어디까지인지, 고통을 무아지경으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제재는 왜 없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읽는 내내 알고 있었던 사건들도, 미처 알지 못한 사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저 그들을 고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 언론의 관점에서 타인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소위 ‘기레기‘라는 좋지 않은 의미로 기자들에게 붙는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론 및 기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인정 작가님, 기자님처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뭔가를 이루기 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또 다른 공동체에게 전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공감하는 제 3자이지만, 언젠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함을 알게되었다. 불행과 위험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피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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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후에 SF에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경험하지 못한 거니까 상상의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한번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보자!’하고 인내로 읽었는데, 새로운 상상의 영역을 넓혀주더라고요. 그 이후로 SF를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이 책도 우연히 서점에 갔는데, 책을 소개하는 문구에 ‘멋진신세계를 이을 SF’라는 문장 하나를 보고 읽어보게 됐습니다. 저번에 읽었던 <멋진신세계>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책 속에 형성된 가상의 세계에는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형벌이 아닌 임무해제는 두 가지 뿐이었다. 노인들의 임무해제와 아기들의 임무해제.” “기초가족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이렇게 두 아이만을 맡도록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건 규칙 위반이었지만 아기나 노인의 몸은 예외였다.” 이 외에도 지켜야 할 규칙들이 수 십가지였습니다. 묘사되지 않은 것들까지 하면 수 천가지도 넘겠죠.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면서도 ‘사소한 도덕적인 부분에서까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좋은 사회를 만드는건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어젯밤 꾼 꿈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규칙으로 명시되어 어기면 안되는 규율로 여겨집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한 부분에서는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알기도 하잖아요. 현실에서 이 부분은 개인의 양심에 따른 문제인거지 법적으로 조치를 하거나 개개인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책 속에서는 가능하죠. 이런 규칙들이 과연 사람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억압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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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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