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분석
4.8~5
4.3~4.7
점수를 깎을 명분이 도저히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게 완벽했던, 정말 정답같은 작품. 솔직히 같은 점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개인적인 임팩트는 부족하지만… 비판할 점이 있어야 비판할 것 아닌가. 연재 작품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지녀야할 모든 조건을 충족하며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된 장편 연재 작품은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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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건 에리가 예쁘다는거야. --- '안녕, 에리'는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작품이다. 후지모토 타츠키를 정말 사랑하는 내가 보기엔 이 작품은 파이어펀치 엔딩이 욕먹는게 꼬와서 나온게 맞다. 적어도 무조건 영향은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후지모토 타츠키는 그런 걸 엄청나게 신경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집에는 재미있는 점이 있다. 그건 바로 70%의 작품이 편집부의 "후지모토 타츠키는 ~같은 건 전혀 못하지" 같은 코멘트에 의해 탄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타츠키의 입에서 나온 증언이니, 그것들이 구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구라를 치는 것 부터 이미 그런 걸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나온 단편도 체인소맨에 시비걸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나도 동감한다! 체인소맨은 2부도 위대하다고. 다시 말하지만 안녕 에리는 치사한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종의 복수기 때문이다. 안녕 에리라는 만화에 대한 해석, 감상, 비판, 칭찬, 모두가 작품 내에 내제되어 있다. 우리는 작 중에서 에리와 유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이미 했던 반응들을 그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심지어 정신 나가 보이는 후반부의 전개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대한 해석도 작품 속에 이미 존재하는 범위를 절대 넘을 수 없다. 이 만화에는 독자의 위치가 없다. 그저 광오하고 오만한 후지모토 타츠키와 그의 교묘한 술법들이 우리의 감상을 농락하는 걸 지켜보아야 한다. 파이어 펀치를 싸내고 욕을 먹은 후지모토 타츠키는 화가 너무나서 절대 비판 받을 수 없는 만화를 만들었다. 정확히는, 비판 받을 점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다. 작품안에서 그걸 자꾸 언급하고, 나중에 그걸 비판하는 사람에게, "나는 알고 있었어"라고 말하려는 속셈이 훤히 보인다. 그런고로 이 작품을 비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비평을 찾아보면 80%가 이 이야기를 한다. 독자의 자리가 없다는 내용은 아쉽게도 만화에 없었기 때문에 편하게들 하는거다. 작품이 괘씸하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작품을 그토록 사랑하냐면...... 사람들에게 안녕, 에리는 어떤 작품일까? 정말 독자의 자리를 찬탈한 치사한 만화인가.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만화는 예쁜 에리와 유타가 영화를 만들어서 문화제에서 복수를 하려다가 갑자기 작가가 미쳐서 폭파 엔딩이 나버린 이상한 만화일 것 이다. 어떤 사람은 어이없는 엔딩을 욕할 것이고, 어떤 힙스터는 '뭔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았어.' 하면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릴거다. 세상에 힙스터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이 만화를 벌써 10번도 넘게 읽었지만, 그 감동과 기쁨은 여전히 내게 전해진다. 그것은 타츠키의 욕구에 내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안녕 에리에서, 영화는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안녕, 에리도 영화다. 안녕, 에리는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를 담고 있다. 그의 작법, 감성, 가장 좋아하는 것, 그림체까지. 만화를 읽으면 그 저편에서 이 만화를 그리고 있는 타츠키가 보인다. 에리는 작중에서, 지루하지 않고, 현실과 창작이 교차하는게 좋고, 감동적이고, 마지막의 엔딩을 사람들이 좋아해주지 않아서 엄청 분하다고. 유타의 데드 익스플로전 마더에 대해 평을 남긴다. 에리의 존재가 바로 이 작품의 가장 거대한 욕망이다. 에리는 파이어펀치를 좋아해 준다고. 안녕, 에리는 그런 에리에게서 졸업하겠다는, 그런 포부를 지닌 작품으로 읽힌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련 없이 에리를 떠나는 장면으로 그런 해석을 할 수 있다. 애초에 제목부터 안녕, 에리잖아.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니다. 이 인간은 정신을 못 차렸다. 왜냐하면 이 이후에도 이런걸 또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품 내적으로 보아도. 안녕, 에리는 그 자체로써 하나의 작품 내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에리를 졸업할거 였으면 이런 치사한 작품 따위 만들면 안된다. 남의 평가에서 졸업할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마지막의 폭파가 있고. 그 뒤에 남은 것은 역시 후지모토 타츠키와 우리다. 누군가는 웃고, 울고, 욕하고, 찬양하고. 그럼에도 내가 이 작품을 그토록 사랑하는 건 이 작품이 보여줬던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게 마음에 들고, 몇몇 사람들이 마지막의 폭파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후지모토 타츠키가 좋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 보고 싶기 때문이고, 그가 그려낸 에리와 유타의 모습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은 역시 그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 또한 언젠가 내가 제일 사랑하고 공들인 똥 같은걸 만들어서, 욕을 거하게 뒤집어쓴다면. 어디선가 하늘에서 초절정 미소녀가 내려와서. 이렇게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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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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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 위에 앉은 고양이가 눈 앞에서 반짝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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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웅장한… 젤다 야숨!! 젤다 야숨이라는 단 하나의 게임이 게임사를 정말 얼마나 바꾸었는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이 작품은 먼저 다 죽어가던 닌텐도를 혈혈단신으로 일으켜 세우고, 동물의 숲 실행기가 될뻔한 닌텐도 스위치의 흥행을 주도했다. 야숨은 원신을 탄생시켰고, 수많은 젤다 라이크 실패작 쓰레기들을 양산하였으며… 거의 모든 게임에 스태미나 링을 박아 넣었다. 야숨의 ost의 인기는 너무 대단해서 심지어는 그걸 자사 게임에 몰래 박아둔 정신 머리 없는 개발사도 탄생시켰다. 야숨 이후로 우리는 칼을 불 위로 휘두르면 칼에 불이 붙는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주인공은 원래 어디든지 기어 올라갈 수 있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놈의 글라이더! 이제 오타쿠 오픈월드 게임은 전부 글라이더를 들고 나온다. 물론 위의 모든 것들이 야숨이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야숨 이후 이상하리 만치 게임들에서 저 요소를 싸그리 모두 가지고 있는 게임이 참으로 많이 늘어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야숨은 탄생한 바로 그 순간부터 게임계에 많은 혁신을 가져왔고… 가장 큰 업적은 역시 셀 쉐이딩 카툰 그래픽을 유려하게 구현한 것이다. 해당게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소울워커 보더랜드 붕괴… 기존 우리가 “툰 렌더링”이라고 부르던 기괴망측하고 못생긴 렌더링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지금의 명조와 같은 유려한 카툰 그래픽 미소녀를 구경할 수 있게된 것에는 젤다가 카툰 그래픽 자체에 가져온 패러다임 변화의 공이 상당히 클것이다. 나는 야숨이 없는 게임 시장은 지금과 상당히,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신이 없는 게임 시장이라니! 야숨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코레류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야숨 사랑해요. 야숨이 왜 재미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너무 양이 많아서 못 적을 것 같다. 그냥 꼭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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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모두 보낸 빈지노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좋은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이다. 추악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청춘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사랑도, 살인도 아름다울 수 있다. 다만 그저 아름다운 것들은 평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것에는 층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평단 대중이라는 자들의 입장에서 사랑이나 평화 꽃, 꿀에 찍어먹는 가래떡 같은 것 들은 너무나 단순하게 아름답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사랑한다. 살인을 사랑하고 피가 낭자하고 실연과 불륜을 예찬한다. 슬픈 이야기, 부정적인 이야기, 그런 것들이 현실이라고 말하며 그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 맥락 속에서 나는 노비츠키를 평가할 수 밖에 없다. 노비츠키는 빈지노의 삶을 전시한 전시대다. 빈지노의 삶은 어떤가? 삼십대를 지나가고 있는 빈지노의 삶은 어떤가? 그는 이미 성공한 뮤지션이다. 모두가 그를 추앙하고 그의 소식과 패션은 모두의 선망이 된다. 성공한 미술인이며, 성공한 패션디자이너이고, 성공한 대표이다. 좋은 인망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으며, 넘칠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노비츠키는 그런 뮤지션의 삶을 전시한다. 빈지노의 삶은 아름답다. 아주 단순한 계산법에서. 평단 대중은 보통 그런 단순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노비츠키는 아주 아름다웠고, 모든 평단이 노비츠키를 찬사했으며, 노비츠키는 한대음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은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추악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그것은 너무나 오래 지속되어 일종의 전형이 되었으며, 평단의 평가를 높이는 가장 높은 방법은 더럽고 추악하고, 슬프고 부정적인 것을 조명하는 것이 되었다. 노비츠키는 그 전형을 정면으로 부딫히고, 최고의 캐릭터와 프로덕션 빈틈없는 랩 메이킹. 모든 완벽이라는 구조를 최대한 극대화하여 모든 대중에게 투사하였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심하여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므로 이 음반은 그만큼의 찬사를 받은 것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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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구경하는 기분. 이걸 보고 미국행 티켓을 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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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방법을 고를 수 있다면 마키마한테 맞아 죽고싶어… --- 체인소맨은 삶의 정체에 대한 후지모토 타츠키의 길고 긴 대답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마 헤메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유독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 대답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예리하기 때문이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거의 모든 작품은 삶에 대한 것이다. 에리, 후지노, 쿄모토, 덴지와 마키마, 아사도. 모든 등장인물들은 삶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체인소맨은 그 대답을 거의 완벽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늘어놓고, 매력적인 사건을 배치하고, 매력적인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원심분리기에 넣어서 마구 돌려버린다. 그러면 원래 완벽했던 것들이 뒤죽 박죽 얽혀서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엉망이 된 만화 속에서 완벽의 잔재와 타츠키의 원심분리기가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던 작은 생각들을 마주칠 수 있다. 이 작은 생각들은 너무 미묘해서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작은 파편 때문에 우리는 영문 모를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 작품을 좋다고 칭송하게 되며, 정신병적인 등장인물들과 공감하고 유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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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 고양이, 레즈비언 전 여친, 인터넷 찐따, 성인용 안드로이드, 알코올에 찌든 용병, 통속의 뇌, 고지능 시바견, 최고의 음악이 우글거리는 좁아터진 술집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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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오카 하루히 미친 진짜 내 인생 최고의 캐릭터 진짜 미친 만화 그냥 행복함 그냥 오란과 관련된 무언가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짐 리뷰 쓰면서도 그냥 막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막 말이 안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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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차이가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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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뽑은 가장 위대한 시트콤, 한국인이 제일 싫어하는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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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에서 몰려오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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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의 소년들에겐 기사님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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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람과 사람이 손 붙잡고 걸어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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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녹색 여름을 끼얹은 대강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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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슈게이징이 좋게 들린다면 인생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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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순수하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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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턱 끝까지 숨 막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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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론파 시리즈의 최고점, 압도적인 몰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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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빈백's
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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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
~1.7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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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8
~3.2
70
~3.7
70
~4.2
20
~4.7
6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