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기술, 역행하는 인류.>
사회는 점차 특정한 기준치―전쟁, 무기, 외교―를 가지고 발전한다. 이러한 발전은 강한 나라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약한 나라는 더욱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 교류한다. 그 언어는 일상의 범주에 속하지만, 신문 기사,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출판되는 소설 등에서는 특정한 '문법'과 '구조'를 지니게 되고. 언어학자인 "존 폴"은 학살에는 문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언어'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기관"임과 동시에 특정 상황에 대한(학살) 징조를 투영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세간에서는 종종 언어를 인간이라는 종이 우월한 이유로 사용하지만, 결국 '언어' 역시 생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얻은 진화의 산물에 불과하다. 다른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런 '언어'가 인간의 모든 사고를 규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어'로만 통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사랑. 양심. 분노. 그리고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모든 순간들. 그렇게 인간 안에서 형성된, 진화의 산물로 구축된 '마음'은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방향성을 배척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분노하는 일. 자신이 사랑하는 타인을 위해 증오하는 일(p334).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일. '언어'를 통해 나와 타인을 정의하고, 서로가 서로를 비교 대상으로 삼으며 집단의 안정성을 형성하는 와중, 이따금 '마음'은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한다. 사회와는 무관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p136) 형질이 바로 돌연변이인 셈이다.
결국 진화를 갈망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인간도 진화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옥에 있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발목을 붙잡힌 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발목을 붙잡히는 게 인간이다. 이미 우리 유전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형질이 생성되었고. 심장이라는 가장 깊숙한 "기관"에 뿌리를 내렸으니 말이다.